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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4 조회수1,56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4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보 3,13-18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복음 마르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면 어떻습니까?

 자존감이 높아지며 자신 있게

지금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면 그만큼

지금 삶을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친한 친구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대화도 없이 친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계속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지고, 특히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아야만 진정으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때,

 때로는 어렵고 힘든 부탁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어렸을 때, 윗사람에게 억지를

썼던 적이 많았습니다. 어머니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했고,

 형제들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했습니다. 그때 크게 혼나고

거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가족 안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주님께 영이 들린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냐?” 하고 물으시지요.

주님께서 이 답을 모르셨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알아서 치유해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왜 하실까요?

대화를 통해 믿음을 키워주시려는

것입니다. 영이 들린 아이를

치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또 이를 위해 믿음이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내게 필요한 것을

 해 주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즉 기도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제자들에게도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방법을

이렇게 분명히 말씀해주시지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의 대화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이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확실한 증거.

(샤를 들레스티블)

내 인생의 배낭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강화에서 부산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뒤에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었습니다.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워낙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니

기분도 좋고 상쾌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이 드는 것입니다.

특히 어깨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 때문입니다.
배낭에 모든 짐을 담고 들었을 때는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 정도면 자전거 여행에서

힘들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대전의

한 우체국에 들어가 배낭 전체를

집으로 택배보냈습니다.
이제 남은 짐은 아주 간소해졌습니다.

칫솔과 치약, 비상금이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짐을 정리한 뒤 자전거

여행에 온전히 집중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전교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들고 가지 말라는 것은

어쩌면 ‘전교’에만 신경 쓸 것을,

 그리고 주님에게만 집중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관심 가는 것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주님께 집중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배낭을 정리해야 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로서의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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