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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시험[1/2]/아브라함[1]/창세기 성조사[2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4 조회수1,476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9.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시험[1/2]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칼데아 우리를 떠나, 가나안에 온 지도 쾌나 되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어떤 시련도 거뜬히 극복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유목 생활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그 지역 유지들과도 안면도 익히게 되었고, 주위에 나무도 심어가며 나그네살이가 다소 안정된 모습으로 되는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런 일들은 아마도 지금껏 그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가리킬게다. 그 중에서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은 이집트 여종 하갈에게서 아들을 얻어 대를 잇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와 사라가 하느님의 약속을 인내로 기다리지 않고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16,2)라고 말하며 인간의 지혜로 일을 해결하고자 한 것도 하느님에게는 어쩌면 불신의 작용을 하게 한 하나의 걸림돌이었을 수도.

 

그렇지만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지 못한 그들에게, 하느님은 그래도 처음 그를 부른 것을 기억하시어 끝내 그 백 살이나 되는 늘그막 나이에도 아들 이사악을 낳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하가르에게서 얻은 소실의 애는 제 갈 길로 보내고서는 그래도 가정의 평화를 나름으로 구가하는 중이었다. 이런 기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마음을 잡수신 모양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믿기가 부담스러워 시험하신단 것도 어쩜 좀 수상쩍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하등 한 인간을 믿기가 그렇게 두려워 이 엄청난 시련의 시험을 어찌 할 수가! 구약에서 옛날에 있었던 일을 한참이나 지난 뒤에 되새기면서 그 시련의 일을 통상 하느님의 시험으로 해석하는 사례가 참 많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신명 8,2).

 

이렇듯 시험은 대다수 집단 또는 단체, 내지는 민족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고 이번처럼 한 사람 아브라함을 시험할 수도 있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아브라함도 이 시험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시험에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시험은 상상하기조차 참으로 끔직하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그것도 백 살이나 되는 그 늘그막 나이에 얻은 아들을, 그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자식을 번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자식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로 쳐서 죽여 불에 태우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종교들에서는 실제로 그런 번제물을 바쳤단다.

 

장소도 브에르 세바에서 사흘거리 떨어진 모리야 땅이라니 참으로 난감했다. 장소는 산인데, 아브라함이 그곳에 도착하면 그곳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겠단다. 모리야 땅은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산, 시온 산’(2역대 3,1)의 이름이다. 북쪽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바쳐야 할 곳을 그리짐 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모리야라는 명칭은 후대에 부여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피눈물 나는 순명이다. 도덕은 인간의 삶에 속하지만, 순명은 어쩜 하느님의 영역에 둔다.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고자 모리야로 아들을 데리고 가는 아브라함이다.

 

침묵 중에 걷는 그 사흘 길’, 눈앞이 캄캄한 그 칠흑처럼 어두운 그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의 신앙은 굳어질 만큼 단단해져 사랑하는 외아들을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저 그렇게 생겨난 게 결코 아니다. 이렇게 그는 자식을 데리고 모리야로 가는 것이다. 처음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내 사라는 불리지 않았다. 그 역시 사라에게 이 시험에 대해서는 입에도 담지 않았을 게다.

 

만약 사라가 이를 단 한순간이라도 눈치 챘을 경우, 그는 결코 모리야행 결단을 감행할 수 없었을 게다. 어떻게 낳은 이사악인데 번제물로 바쳐진단 말인가?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이 준엄한 부름을 혼자만으로 삭여야 했다. 사라도 아시악도 지금 함께 가는 두 하인도 왜 모리야로 가는지 아무도 모를 게다. 이는 하느님과 아브라함만이 아는 비밀이다. 무심하게도 모리야는 거기에 있었고, 어이없게도 모리야는 번제물인 이사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얻은 아들인지를 모리야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시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자식을 데리고 모리야에 있는 시온 산으로 간다. 아들을 죽일 불과 칼을 손에 들고서. 아마도 지금 아브라함은 그 칼로 자식을 죽이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사생결단의 독을 품고 산으로 오른다. 철없는 이사악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지고 아버지 뒤가 아닌 곁을 말없이 걷는다.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하고 대답하였다. 산으로 오르는 아들의 부름에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게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하고 대답하였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한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렇다고 이사악 네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 그 번제물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할 게다. 장작을 진 이사악, 불과 칼을 든 아브라함이 함께 그렇게 걷는 동안, 시온 산은 말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계속]

 

[참조] : 이어서 '30.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시험[2/2]'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믿음,모리야,번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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