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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의 수요일 제1독서(요엘2,12~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6 조회수1,10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6일 재의 수요일

재의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다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람은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창세 3,19 참조)는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준다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단식과 금육을 함께 지킨다. 

 

 

 

 재의 수요일 제1독서(요엘2,12~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2~13)

 

'이제라도'에 해당하는 '웨감 앗타'(wegam atha)는 '모든 것이 다 끝장 나버린 상황에서라도''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때라도' 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갖지 못한다. 더우기 돌아가야 할 대상이 거룩하신 하느님 더군다나 심판의 재앙을 단행하여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신 당사자이신 하느님이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면서 그들에게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베푸시는 사랑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이지를 엿볼 수 있다.

본문은 하느님의 백성이 어떤 자세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말한다.

 

네가지로 제시되는데 원문상으로는 네 가지 태도 가운데서  '마음을 다하며'란 어구가 맨 먼저 나온다.

이에 해당하는 '뻬콜 레바브켐'(bekol lebavkem)은 결코 거짓된 태도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가야 할 뿐 아니라 온 힘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마음' 지칭하는 단어는 '레바브'(lebav; heart)이다. 이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감성을 내포하는 인간의 본질적 부분을 가리킨다. 마음이 빠진 외적 행위만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다.

 

두번째로 '단식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촘'(ubetsom)의 어근 '촘'(tsom)은 번역 그대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행위 의미한다.

율법에서 공식적 단식은 일년에 한 번 있었다. 그들은 대속죄일에 전국적으로 단식했다.

 

그러나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깊이 회개할 때도 단식하고, 국가적, 민족적 위기와 재난의 상황 앞에서도 단식하고 기도했다(1열왕 21,27-29; 요나3,3-10참조). 이같은  진실한 단식에는 하느님의 마음을 뒤바꾸는 큰 힘 담지되어 있다.

요엘기 2장 15절에도 '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고 하면서 '단식'이 또 나온다.

원문은 '캇데슈 촘'(qadeshu tsom)인데, '단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라'는 표현은 구별하여 떼어 두라는 의미이다.  어느 한 날을 '단식일'(tsom)로 정해서 사람들이 그 날을 다른 날들과 철저하게 구별하여 모두 단식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집회' 해당하는 '아차라'(atsara)는 요엘기 2장 14절에도 나온 표현으로서 집단적인 회개를 목적으로 한 집회를 지칭한다.

 

세번째로 유다 백성은 '울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베키'(ubebeki)의 어근 '베키'(beki)는 어원적으로 큰소리를 내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도록 우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총리가 된 후, 형제들을 만난 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다가 자기 방으로 가서 대성통곡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으며(창세 45,2), 히즈키야 왕 하느님으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은 후에 하느님께 목숨을 구하면서 대성통곡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2열왕 20,3).

이같은 사례를 고려할 때 하느님께 회개하며 나아가는 자들은 가슴을 치면서 통곡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넷째 유다 백성은 '슬퍼해야'(애통해야)한다고 권면한다. 이에 해당하는 '우베미쓰페드'(ubemisped)의 원형 '미쓰페드'(misped)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머리카락을 쥐어 뜯거나 가슴을 치는 행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하만의 간계로 멸절 위기에 처한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절망적 운명을 생각하면서 부르짖은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에스4,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13)

 

요엘기 2장 12절에서 요엘은 주님의 날의 도래에 앞서 진심으로 회개하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본절에서 요엘은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요엘은 그들에게 '마음'을 찢으라고 명한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하느님 대전에 진심으로 회개할 때 옷을 찢곤했다(창세37,34; 여호7,6; 1열왕21,27참조).

 

그러나 요엘 예언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 말라고 말한다. 옷을 찢는 것은 회개의 표시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칫 형식적 행위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외적 의식은 마음을 변하지 않고 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 은유적 표현인데, 이것은 가슴에 상처를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심령으로 통회하는 것 의미한다.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51,19)

 

왜 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받아주시고 작정하신 심판을 철회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에 제시된 주 하느님의 속성은 이미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계시해주신 하느님 자신의 속성이기도하다(탈출34,6-7).

 

먼저 '너그럽고' 해당하는 '한눈'(hanun)은 지체가 높은 윗사람이 지체가 낮은 아랫 사람에게 호의(친절)을 베푸는 행위를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여기에서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과분한 호의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신약의 희랍어에서 '카리스'(charis)에 해당하며,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은총'(grace)으로 번역된다.

 

둘째 '자비로운'에 해당하는 '라훔'(lahum)은 산모가 자기 몸에 잉태된 태아를 출산하기까지 보호하고 양육하는 자리인 자궁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자신이 직접 낳은 자녀에 대한 부모,  특별히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 나타내는 단어이다.

흔히 구약성경에는 '불쌍히 여기다','자비롭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신명4,31; 느헤9,17). 더욱이 특징적인 사실은 이 단어가 하느님의 속성을 지칭하는 경우 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계약을 맺어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자들이기에 유다 백성이 죄를 지어 참혹한 심판에 떨어져 크나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결코 방치하시지 않으신다.

 

셋째 '분노에 더딘'분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더디고'에 해당하는 '에레크'(erek)는 어떤 물체를 잡아 늘이거나 시간 등을 연장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유래한다.

요엘은 유대 백성들이 주님께서 길게 참으시는 성품을 충분히 이해하여 더 극심한 심판을 당하기 전에 그분에게로 돌아와야 함을 촉구한다.

 

넷째 '자애가 큰'분으로 말한다. 여기서 '자애' 해당하는 '헤세드'(hesed)는 계약의 백성에 대해 베푸시는 주 하느님의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랑 강조하는 단어이다.

요엘 예언자가 이같이 주 하느님의 성품을 네 가지로 나열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유다 백성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17)

 

중재(중보)기도 예언자들도 할 수 있었지만, 중재적 성격을 지닌 제사는 사제들만이 드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따라서 요엘 예언자는 당시 상황에서 온 백성이 단식하고 집회를 이루어 주님 대전에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특히 사제들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중재 기도를 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에서 '성전 현관'(하울람; haulam)은 성소로 들어가는 동쪽 현관 말하며, '제단' 해당하는 '미즈빼아'(mizbeha)는 성전의 성소 밖에 위치한 번제단을 지칭한다.

그 번제단과 성전 현관사이는 흔히 "사제들의 뜰"로 불리워지며 그곳에서 사제들은 제사가 집전되는 중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에제8,16).

 

특별히 여기서 요엘은 그들이 울면서 기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에 해당하는 '이브쿠'(ibku)의 원형 '빠카'(baka)는 단순히 우는 정도가 아닌 큰 소리를 내어 통곡하는 것을 의미 하는 동사이다(창세21,16; 27,38).

본문에서 이 단어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었는데이는 그러한 통회와 자기 복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죄사함의 은총과 회복이 내릴 때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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