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28.“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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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20-02-28 | 조회수1,17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마태 9, 14-15(재의예식 후 금)
오늘 <독서>와 <복음>은 ‘참된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단식’이란 레위기 16장 29-31절에 따르면, 잘못을 속죄하고 정결해지기 위해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깨끗한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단식을 배척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단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단식을 배척하셨습니다. 동시에 이제는 새로운 단식, 곧 구약의 ‘속죄의 단식’이 아닌 ‘사랑의 단식’을 제시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시면서, 사실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계시해주십니다. <첫째> 이유는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슬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시에 당신이 신랑이심을 계시하십니다. 곧 당신이 바로 종말에 오실 신랑(묵시 19,6-9)이자 메시아이심을 계시해주십니다. 사실, 구약성경 곳곳에서도 하느님을 신랑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이사 54,5-6;62,4-5;호세 2,16-20).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불렀습니다(요한 3,29). 예수님께서도 하늘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셨고(마태 22,2),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과 교회 혹은 신자들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하셨습니다(2고린 11,2;에페 5,23-32). 그러니, 이제 신랑과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는 달리 단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여전히 단식이 필요합니다. 단지 그 의미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둘째> 이유에서 그것을 밝혀주십니다.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
이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해주시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곧 수난 받는 ‘야훼의 종’인 메시아를 계시해주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단식을 해야 할 이유를 밝혀주십니다.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이 수난에 감사드리며, 다시 오실 신랑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단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의미의 단식입니다. 결국, 단식은 감사와 사랑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을 행하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는 참된 단식입니다. 이를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끄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입니다.”(이사 58,6-7 참조).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으십니까?”(마태 9,14)
주님! 몸으로는 단식하면서도 마음은 다투고 주먹질하지 않게 하소서. 제 마음 속 부자유의 멍에를 풀고 불의의 결박을 부수소서. 당신의 선물인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식하지 않게 하소서. 생명을 내어놓음으로 생명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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