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3 조회수2,03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20년 3월 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복음 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전할 때면 더욱더 수긍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앞의 차가 천천히 가면

앞차를 향해 ‘바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빠르게 자기 차를 추월하면

그 차를 향해 ‘미친 X’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천천히 가거나 또 빠르게

간다는 것이 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들어야 할 일일까요?
어느 성당으로 강의를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기에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가 나가야 하는 고속도로

출구까지는 꽤 거리가 남아 있는데,

 맨 오른쪽 차선으로 길게 차가

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가는

곳으로 가는 차들은 아니겠지?

이렇게 몇 Km나 차가

밀릴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으로

쭉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뒤, 이렇게 늘어선 차들

모두가 제가 나가는 출구로

나가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서

출구로 나가려는 차들 앞으로

끼어든다는 것이 염치없고 미안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 출구로 나가면 강의

시간에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염치 불고하고 끼어들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에 뒤의 차는 경적을

울리며 난리였고, 어떤 차는 정말로

부딪히려는 듯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함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상황이 이들에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내 처지에서

바라보는 판단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판단을 내세우는 삶이

더욱더 올바른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모두 7가지의 청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나라가 오게 하시며,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앞의

세 가지 청원은 영원한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뒤의

 네 가지 청원은 현세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 뜻이

먼저이고 이 세상의 것은

 나중이라는 것을 묵상할 수

있게 됩니다. 또 뒤에 나오는

이 세상의 것도 결국 하느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기에 모든

청원은 하느님께 맞출 수 있는

 믿음을 달라는 것이 됩니다.
이 기도를 진정한 마음으로

바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느님 판단을 가장 앞에

내세워야 가능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

비록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이 우리 눈에 매우

나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이다.

(성 토마스 모어)

본성에 충실하십니까?

한 수도승이 길을 걷다가

독을 잔뜩 품고 있는 전갈이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헤엄칠 능력이 없는

전갈이기에 그냥 두면

죽는 것을 알고 있는

수도승은 이 전갈을 집어서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전갈이 수도승의

손을 문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손을 흔들었고

전갈은 다시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뒤, 수도승은 다시

전갈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갈은

수도승의 손을 또 물고 말았지요.

이번 역시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고,

전갈은 또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수도승은 다시 전갈을 구했습니다.

 이번에도 전갈은 수도승의 손에

독을 찔렀고 이번에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안전한 풀숲에

전갈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전갈이 고마워했을까요?

전갈은 아무런 감사의 표시도 없이

재빨리 사라졌습니다.
이 모습을 모두 본 동료

 수도승이 말합니다.

“전갈이 당신을 계속 찌를 게

뻔한데 왜 끝까지 구한 거죠?”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전갈은 찌르는 것이 본성이고,

나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전갈이나 나, 모두가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죠.”
본성에 충실하십니까?

특히 내 안의 낮은 본성이 아닌,

하느님께서 주신 높은

본성에 충실하십니까?

(이스라엘 주님의 기도 성당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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