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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사악과 레베카의 결혼[5/5]/아브라함[1]/창세기 성조사[3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3 조회수1,99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7. 이사악과 레베카의 결혼[5/5]

 

이리하여 그 종은 레베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 이사악은 브에르 라하이 로이를 떠나, 네겝 땅에 살고 있었다. 브에르 라하이 로이는 라하이 로이 우물로 옮길 수 있다. 이 장소는 주님의 천사가 하가르에게 이스마엘의 탄생을 알렸던 곳이기도 하다(16,14). 이사악이 다시 그곳을 떠나 네겝 지역으로 옮겼다니, 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삼 년 전 사라가 죽을 때,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살았다는 것을 볼 때(23,2), 아마도 부자간의 이 두 세대는 서로 떨어져 독립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종은 곧장 아브라함한테로 가지 않고 아들 이사악한테로 간다. 이렇게 종은 그가 사는 곳을 이전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저녁 무렵 이사악이 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눈을 들어 보니, 낙타 떼가 오고 있었다. 그때에 레베카도 눈을 들어 이사악을 보고서는 얼른 낙타에서 내려, 그 종에게 물었다. “들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오는 저 남자는 누구입니까?” 그 종이 그분은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레베카는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이사악과 레베카의 만남은 어쩌면 참으로 속전속결이다. 너무나 단순 간결하다. 그간 지나오는 과정이 너무 세밀하고 복잡해서 그런가 여겨지기도 한다. 저녁나절 그 들에서 이사악도 보았고 레베카도 보았다. 서로서로 거의 동시에 본 모양이다. 성경에서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눈앞에 보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함을 가리킬 경우에 통상 이런 표현을 쓴다. 그렇지만 이 둘의 첫 대면인 그 중요한 만남이 너무나 쉽게 처리된다. 이는 아마도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서일까? 다만 처녀 레베카가 의당 너울로 얼굴을 가리는 단순한 행동만 언급한다.

 

이처럼 처녀가 너울을 쓰는 그러한 행동은, 고대 관습으로는 자기 남편 될 이에게 행하는 최대한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가 항상 너울을 썼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혼녀는 상대를 만나기 전에는 꼭 너울을 썼다. 이렇게 얼굴을 가린 약혼녀는 오직 신방에서만 너울을 벗고, 남편에게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 종은 이사악에게 자기가 한 모든 일을 이야기하였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일에서부터 나호르 성읍 우물가에서 레베카를 만난 배경, 그리고 그녀의 오빠와 나눈 대화 등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믿는 하느님께서도 늘 함께하셨다는 것도 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종은 이사악에게 그동안의 과정은 낱낱이 보고한다.

 

사실 이사악과 레베카의 친족 결혼에 있어서, 실제 성사는 양가의 대표 격인 아브라함과 그의 친조카 라반이었다. 혼인 추진 전체 방법의 결정권은 분명 아브라함이 쥐고 있었고 실제 추진은 그의 나이 많은 종이 도맡았다. 그 종이 양가의 의견을 수렴해 당사자인 이사악과 레베카가 이렇게 만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선남선녀의 만남 전에 종은 주인 아브라함한테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친손녀 레베카의 사전 만남도 없었다. 결국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사악의 아내 될 손녀 소식과 그의 동생 집안의 최근 근황을 전혀 알려주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여러 성경학자는 아마도 이 당시에 아브라함이 죽었음을 추측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 종이 그가 그토록 엄격하게 맹세한 주인 아브라함에게 곧장 가지 않고 아들 이사악에게 바로 달려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해석이다. 이사악은 나이 마흔에 레베카와 결혼했다(25,20). 이때 이사악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는 백사십이다. 그것은 그가 거의 불가능한 나이인 백 살(17,17; 21,5; 로마 4,19 참조)에 사라에게서 얻은 이사악이니까. 그 아브라함은 이후 삼십오 년을 더 살다가 백칠십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25,7).

 

아무튼 이 만남을 그토록 갈망한 아브라함은 최종 단계에서 빠졌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거듭 언급하지만, 창세기 전체 내용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분량으로 다루고 있는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이야기의 마무리는 참으로 싱겁게 처리되고 있다. 모든 주도권을 쥔 아브라함은 마지막에 쑥 빠졌다. 그 과정 과정을 하느님께서 직접 주도하셨기에 빠진 것일까? 이렇게 그가 최종 단계에서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는 가짜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정도로, 이사악과 레베카의 만남은 아브라함이 빠진 상태에서 정말 단조롭게 성사되었다.

 

레베카는 근동의 풍습대로 존경을 표하기 위하여 낙타에서 내려와 이사악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이사악은 레베카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레베카가 삼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라의 천막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녀가 이제는 아브라함 공동체 안에서 여자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레베카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었다.

 

이 혼인 이야기는 하느님의 약속 성취라는 관점에서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강복하시면서,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12,2).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며느리를 친족 중에서 찾도록 하였고 이를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의 종을 시켜 그 사명을 부여한 거다(24,7). 이렇게 그는 하느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다시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의 이름은 크투라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38. 크투라에게서 얻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네겝,헤브론,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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