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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5 조회수1,564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입니다. 화요일 저녁부터 독서와 복음을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다가 고민을 하나 했습니다. 내일 복음 묵상에 대해 나름 생각을 정리해 올리면 이건 마치 어쩌면 신부님들이 사용하시는 기법이 될 것 같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그냥 내일 복음은 제 머리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그냥 하루 건너뛰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복음 묵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도 평신도면 평신도의 본분에 맞게 해야지 마치 사제처럼 글을 올리는 건 저의 가치관으로써는 지양해야 될 것 같았지만 중간에 하루 생략하니 느낌이 좀 이상해 그럼 지금까지 한 모양으로는 하지 말고 나름 하나의 포커스에만 맞추어 짧게라도 올리는 게 좋을 듯해 올려야겠다고 생각해 올립니다.

 

지금 목요일 새벽입니다. 수요일 어제 복음과 독서의 내용은 회개와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요나는 하느님 말씀대로 니네베로 들어가 백성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외칩니다. 저는 독서에서 나오는 요나의 외침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라는 말과 독서의 맨 마지막 10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이 성경 말씀에 주목을 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십 일이 지나면 무너진다는 이 말씀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지금은 사순시기입니다.

 

이번에는 국가적인 초유의 사태로 인해 실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하는 의식도 하지 않고 미사를 성당에서 드리지 못하니 솔직히 말해 시기는 사순인데 사순 같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해서 저는 중요한 걸 하나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말입니다. 그 복음 말씀이 절실히 느껴지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왜 순간 생각이 나지 않는지 머리에 맴돌기만 합니다. 미래사목연구소 신부님 얼마 전에 선종하신 신부님 말입니다. 그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예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굳이 하느님을 마음으로 믿고 그냥 열심히 살고 하면 되지 굳이 성당에 나올 필요가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때 마침 그 예화에는 난로가 등장합니다. 제 기억이 좀 희미하긴 하지만 내용은 비슷할 겁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난로에 있는 장작을 하나 꺼내서 밖에 놓았는지 아마 그와 비슷할 겁니다.

 

이 내용에서 그 청년이 중요한 걸 발견했습니다. 아 이제 생각납니다. 차동엽 신부님이십니다.

 

난로 안에 있는 장작은 그래도 불이 잘 붙어 있었습니다. 근데 난로 밖에 나온 장작은 빨리 장작에 붙은 불이 꺼져버렸습니다. 아무튼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아마 6년 전에 본 내용이라 정확하게는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신부님의 예화에 나오는 이 예에 대해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예를 통해서 왜 신앙을 하면서 공동체가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끼는 시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마지막에 가셨는지를 인간인 제가 얼마나 알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아주 아주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번 사순이 지나면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이 무너지고 하느님의 본성이 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무너지는 순간이 바로 10절에 나오는 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 말입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독서에서 나오듯이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묵상을 했습니다.

 

이 사순기간만이라도 정말 정신을 집중해서 우리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내면 속에 무슨 악한 생각이 있는지 성찰을 하면서 자신 속에 있는 니네베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날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 우리는 골고타 언덕 너머에 기다리고 계시는 부활한 예수님을 맞이하러 지금 저희도 골고타 언덕을 올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사분의 일 능선에 다다라 갑니다. 누구는 이 능선에 예수님과 함께 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지금 어쩌면 아직 출발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시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지금부터서라도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다시 오늘부터 새출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괜히 남 핑계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코로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계를 잘 지키는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아직 성경 내용을 잘 몰라서 어제 복음 내용은 알지만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주석 성경도 있고 또 아니면 200주년 주석서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참조했으면 어떤 실마리를 잘 잡아 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 생각을 해보면 참 어리석었습니다.

 

복음 말미에 나오는 이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라고 나옵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순간 이런 생각이 불현 듯 떠오릅니다.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면 이 사람들에게는 단죄의 권한이 주어진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이 단죄의 권한이 정말 단죄의 권한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뭔가 표징을 요구하는데 그러니 예수님께서 악한 세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나의 표징밖에는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심판 때의 모습을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이들을 단죄할 거라는 말씀은 그들이 회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남을 단죄를 해서는 안 되지만 그나마 남을 단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한다면 그 자격은 우선 자신이 먼저 회개를 해야 된다는 걸 알려주시려는 뜻이라고 해석을 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입니다.

 

제가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은 제가 성경을 전문적으로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눈의 들보를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에 있는 티를 볼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남의 허물을 따질 자격도 없으니 남을 보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라고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오늘은 저의 개인적인 나눔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사를 해도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묵상도 꼭 지식으로 묵상을 하는 게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지 나름 묵상이라고 하는 흉내도 낼 수가 있는 것이지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자칫 묵상을 잘못 할 우려가 있으니깐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그런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나름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그걸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이해를 해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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