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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쌍둥이의 탄생[1]/이사악[2]/창세기 성조사[4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7 조회수1,306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쌍둥이의 탄생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는 이러하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나이 마흔에, 파딴 아람에 사는 아람 사람 브투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 라반의 누이인 레베카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파딴 아람은 아브라함의 종이 레베카를 처음 만난 곳인 우물 샘이 있는 아람 나하라임과 같은 지명이다.

 

이사악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성경에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 여럿이 있다. 레베카를 위시해 사라도 그랬고(11,30), 야곱이 언니 레아보다 더 사랑한 동생 라헬도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다(29,3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1사무 1,2). 신약의 즈카르야의 아내 엘리사벳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루카 1,7)였다. 그러나 이 모두가 다 오랜 기간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거룩한 아들을 낳았다. 기도 덕분이기도 하거니와 하느님이 함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느님께서는 드디어 이사악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의 아내 레베카가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기들이 배 안에서 서로 부딪쳐 대자, 레베카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서, 하느님께 문의하였다. 그분께서 그녀에게 대답하셨다.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 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달이 차서 몸 풀 때가 되고 보니, 레베카의 배 속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에사우와 야곱이다. 물론 야곱이 동생이다.

 

성경에는 두 쌍둥이가 더 있다. 총 세쌍둥이다. 야곱이 낳은 유다와 관련이 있다. 가나안 여인으로 추정되는 타마르가 야곱의 넷째인 유다에게 낳아준 페레츠와 제라(38,27-30) 이다. 사실 타마르는 유다의 며느리다.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에서 쌍둥이가 태어났으니, 그 사연에는 너무나 깊디깊은 내막이 있을 게다. 그 상세 내막은 이사악 다음으로 다룰 성조사 요셉 이야기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이렇게 구약에는 두 쌍둥이가 있고 신약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요한 20,24). 예수님 제자 가운데 친형제는 몇 있어도 쌍둥이는 토마스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가 형인지 동생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아 모른다.

 

여기서 쌍둥이의 이름은 통상 태어나는 상황으로 정해진다나. 에사우는 살갗이 붉고 온몸이 털투성이였다. 이어 동생은 그의 손이 에사우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있어 야곱이라 이름 지었다. 타마르 해산할 때는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 한 아기가 손을 내밀 때 산파가 실을 그 손에 매고서, “이 애가 먼저다.” 하였는데, 그 아기가 손을 도로 집어넣었단다. 그리고는 그의 동기가 나오니, 산파는 네가 틈을 비집고 나오다니!” 하고는 이름을 페레츠라 하였다나. 그다음 그의 동기 곧 손에 붉은 실을 매단 아기가 나오자, 그 이름을 제라라 하였다(38,27-30).

 

쌍둥이 가운데 형 동생 순서도 의당 먼저 나온 애가 형이다. 그리고 성경에는 형제 중에서도 대체로 형보다 동생 쪽의 선호도가 다소 강하다. 하느님은 카인보다 아벨을, 에사우보다는 야곱을,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을, 므나쎄가 아니라 에프라임을 택했다. 다윗도 이사이의 아들 가운데 꼴찌인 막내다. 타마르가 낳은 쌍둥이도 먼저 나온 얘는 페레츠이지만, 법적으로는 손을 먼저 몸 밖에 내민 이가 제라이기에 굳이 따진다면 당연히 동생이다. 그래서 페레츠가 다윗의 족보에는 조상으로 소개된다(마태 1,3; 루카 3,33).

 

레베카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의 이사악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십여 년이나 긴 세월 자식 달라고 목매어 기도하였을 게다. 이 쌍둥이는 자라서,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이사악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이사악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27,3-7)이기에 의당 에사우를 좋아했을 게고, 레베카가 야곱을 더 편애한 것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일러준,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25,23)’는 말씀이 항상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자식 편애가 어쩌면 형제간의 불화로 번져 가정사의 파탄을 종종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사악 집안은 하느님의 개입이 분명히 계셨을 수도. 이는 레베카가 태중의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성소에서 하느님께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태어날 그 애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다(25,2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시다고 대들어야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탈출 33,19; 로마 9,15) 그러므로 하느님의 선택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하느님 자비에 달려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이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이는 완고하게 만드신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출산 전에 레베카에게 전한 말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거다. 부모만이 자식 생명을 만들었다는 것은 착각이다. 부모의 역할은 기도하는 거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는 게 부모의 도리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생명이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다. 많은 부모가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한탄하곤 하는데, 그것은 부모가 자식이 자신의 전유물로 너무 집착에만 빠졌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실 어느 누가 하느님 도움 없이 참 생명을 만들어 낼까? 비록 내 자식이라도 그 생명의 주인은 그분이시며 부모는 단지 그분을 대신하여 자식을 양육하는 대리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게다. 자신이 하느님 영광 드러내는 도구임을 자처한다면, 자식도 부모 영광 드러내는 게 아닌, 하느님 영광 드러내는 자식임을 분명 새겨야만 하리라. 그러기에 둘째가 첫째 되는 일은 어쩜 하느님 시각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실일 수도. [계속]

 

[참조] : 이어서 '2. 맏아들 권리를 매각/이사악[2]'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쌍둥이,파딴 아람, 페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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