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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약속된 부활)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8 조회수1,518 추천수2 반대(0) 신고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약속된 부활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무사하게

잘 지내셨나요?

코로나19가 좀 진정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진정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죠?

대구의 상황을 보면 더욱 답답해집니다.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하루 빨리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길 기도드려야겠습니다.

형제자매님,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사순시기는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또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다짐하는

복된 시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독서들은 다른 때보다

더 강하게 들려옵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제1독서인

창세기 12,1-4은 이스라엘 민족 곧

하느님 백성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고

더구나 나이가 이미 75세나 되었습니다.

유목민이었기에 떠나라라는 명령은

자연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요구는

죽음을 각오하라는 것과 같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의 재산을 탐내는 도적들의

침입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같은 혈족들끼리

모여서 살았고 그들의 법은 다른

문화권의 법보다 엄격합니다.

이에는 이 귀에는 귀라는 동태복수법이

바로 유목민들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부르심에 응답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람을

믿음의 시조가 되게 하시고,

그 후손들에게는 유목민의 꿈인

땅을 주시고 아브람의 이름이 축복을

전하는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형제자매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셔서

영광스럽게 변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했으면

베드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영광스럽게 변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황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냥 그 황홀경에

빠져있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해서 그리스도를 뵙게 될 때

그런 황홀경에 빠질 것입니다.

그때는 다른 것은 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빛나는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은 아직은 그 황홀경에

빠져있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님,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것일까요?

바로 당신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것이기에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보여주시는

빛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부활한 몸을

우리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안함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이 요구는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으로 살도록

불림을 받은 우리의 성소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은총의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는 불멸의 생명을

보증 받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그리스도께서는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해 주시려고 오늘도

미사를 통해서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직접 그 성체를

받아 모실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빨리 성체를 보실 수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상황이 잘 마무리

되도록 열심히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형제자매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는 영원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부활하신 몸을 받아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요 이것이

우리의 복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마칠 때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파견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은 하지만 성당문을 나서면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나는 복음을 전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나는 아직 복음을 전할

용기가 없다.’ 교리를 잘 몰라서...’

언변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스스로 복음전파를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형제자매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가끔 보셨듯이

길거리에서 메가폰을 들고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 천당,

불신 지옥!”하고 외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34-35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서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을 실천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임을 알고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을 가장

잘 전하는 방법입니다.

형제자매님, 누군가가 우리 가정을

방문했을 때, “,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구나.”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항상 자기희생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다리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곧 행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름으로

새로운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역시 부르심에 응답하여

일생 복음을 전하며 살았기에,

교회의 박해자라는 오명을 깨끗이 씻고

사도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고

그리스도와 함께 참된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바오로처럼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자신을 죽이며 형제를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길이요 영원한 생명과

영광된 모습을 보증 받는 길입니다.

(울릉도 도동성당에서)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 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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