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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9 조회수1,29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636절에서 38절까지 짧은 분량의 복음입니다. 복음 내용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수준입니다. 그럼 유치하다는 말씀일까요? 감히 하느님 말씀인데 유치할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 훌륭한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해서 훌륭한 것보다 실제 속속들이 그 사람의 면모를 따져보면 남이 보기에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자기가 하는 일에 혼신의 열정을 쏟고 기본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대성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일에도 충성을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이 아주 쉬운 내용이지만 이걸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지상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남기십니까?

 

우리가 미사 때 성찬의 전례 때에도 나오듯이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십니다. 이건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이 말씀은 꼭 이것에만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도 이에 준해 해석해야 될 겁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주옥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계명으로 말하자면 그건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됩니다. 저는 이런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기에 앞서서 그보다도 더 먼저 전제요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사랑을 실천하는 게 좋다는 걸 몰라서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게 쉽사리 실천이 되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자신에게 계속 암시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저는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바로 남을 동정하고 불쌍히, 궁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느님 근본 속성이 자비라고 하는 부분이 야고보서 511절과 시편 1038절에 보면 잘 나옵니다.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하여 들었고 주님께서 마련하신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크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십니다.

 

시편 1038절 이하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다.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

 

우리의 허물을 우리에게 멀리하시며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에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신다.”

 

이 시편을 보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에서도 보면 하느님께서 병자를 낫게 하실 때 보면 치유해 주시기 전에 예수님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가엾은 마음이 들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사랑으로, 기적으로 치유를 해 주시지만 그 이전에 바로 자비의 마음이 선행되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에 이어 몇 가지 언급하십니다.

 

먼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단죄도 하지 말고 용서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후에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뭔가를 베풀었을 때는 받기는 받되 원래 베푼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흔히들 세상에서 하는 말처럼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심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이 말씀의 좀 더 근원적인 뜻은 오직 판단의 권한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의 고유권한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면 감히 남을 판단할 수가 없다는 이런 뜻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건 내가 바로 하느님의 자리에 서겠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다른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건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을 대적하려고 하는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몰라서 남을 판단하는 것이지 정말 진짜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된다는 걸 피부로 실감을 한다면 과연 우리가 쉽사리 남을 판단하고 재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게 자살행위인데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단순히 우리는 이것의 심각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야고보서 2장 전체를 한번 이 시간에 천천히 성경을 봉독하고 묵상하면 우리에게 이런 악습이 있다면 악습을 제거하는 데 경종을 울려줄 그런 내용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분께서 또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대가 비록 간음하지 않더라도 살인하면 율법을 어긴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2513절인 마지막 구절은 우리의 육비를 찌르는 말씀입니다. 매정한 종의 비유처럼 우리도 지금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서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린 하느님의 심판대에서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얼마나 남에게 저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비와 저희가 남에게 베풀은 자비를 셈하시여 매정한 종과 같다면 분명 하느님께서는 내치실 겁니다. 바로 그게 가차 없는 하느님의 심판일 겁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허물이 있는 그런 나약한 존재라 설령 하느님의 말씀대로 잘 살지 못해 심판을 받게 될 그런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씀처럼 자비를 베풀며 하느님의 모습대로 살려고 아등바등 노력을 한다면 그 노력이 가상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어떤 심판을 내리시려고 하시다가도 자비가 심판을 이기신다는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저희의 허물을 덮어주시는 자비를 내리실 거라고 봅니다.

 

야고보서 516절의 말씀을 한번 보시면 자비는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의지와 상관없다고 해석하면 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 속에 이런 뜻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그 죄를 자복하고 진심으로 통회와 정개를 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뿌리고 베풀고 쌓아둔 자비의 공덕이 생명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을 거라 그때 그 기록을 토대로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내리실 심판이 있다고 하셔도 자신이 쌓은 자비로 하느님께서 내리실 준엄한 심판을 거두어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마태오 복음 5,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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