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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은 아버지를 넘어서면서부터 교만해진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9 조회수2,619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20년 가해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사람은 아버지를 넘어서면서부터 교만해진다>

 

 

 

 복음: 마태오 23,1-12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젠센은 유대 민족의 지적 능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숱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지켜온 신앙 교육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교육의 장()은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교사인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칠까요?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정 교육은 신앙을 위한 것이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하느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부모가 먼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면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부모 위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또 글을 배우기 전에 성경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선생으로서의 부모의 이 신앙 교육이 2천 년 동안 나라가 없으면서도 유대인들을 가장 강력한 민족으로 만들었던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은 다 실행하고 지키되 그 행실만을 따라 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여기서 행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본래 인간이 노력하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단어 에르곤을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적인 행위를 말씀하시기보다는 그들이 에너지를 쏟는 방식은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떤 일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쏟을까요? 바로 자신들을 들어 높이는 일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승이라 불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선생이라 불리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교만해지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해지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겸손해지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말씀 안에 이러한 말씀도 있습니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하느님만을 아버지라 여기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것이 겸손일까요? 오히려 교만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했다고 바리사이-율법학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겸손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왜 하느님을 아버지라 여기는 것이 겸손일까요?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겸손합니다. 아버지만큼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 육체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아버지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게 되라고 하십니다. 이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아버지처럼 완전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하느님 아버지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아버지처럼 하지 못하는 것에 겸손하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이 세상의 아버지도 공경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러니 천상의 아버지 안에서 지상의 아버지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릴 때 귀엽고 사랑스럽던 자녀가 성장해서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속담에 자식이 어릴 때는 그 재롱으로 부모의 두통을 없애주고, 자라서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 오히려 두통거리를 만들어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두통거리가 되지 않게 만들려면 겸손한 자녀들로 키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언제까지나 아이들의 겸손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진정 아이들을 겸손하게 키우고 싶다면 사춘기 전에 아이들의 참 아버지는 하느님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처럼 완전하게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만해지지 않고 하느님의 계명 안에서 오히려 더 부모를 공경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아버지를 넘어서면서부터 교만해집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자녀에게 하느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만드는 표지판이 되어야만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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