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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0 조회수1,396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제가 작년 가을에 경남 산청에 있는 성심원을 갔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도 굿뉴스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도원 입회 관련해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할아버지 신부님이 계신다고 해서 마침 서울에서 성심원에 내려오셔서 며칠 머무르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간에 맞춰 약속을 잡고 만나뵈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신부님이십니다. 그날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가 뜻밖에 겸손이라는 주제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신부님께서 뭔가를 질문을 하셨는데 제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솔직담백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세상적으로 봤을 때는 마치 자기를 드러내는 것 같고 또 겸손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겸양의 미덕을 표현해야 할지를 두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간 고민이 엄청되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교만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없는 사실로 제 자신을 포장한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만 이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말씀을 드린 후에 이 부분이 개신교 다닐 때는 전혀 인식을 하지 않았지만 개종 후에는 조금 인식이 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도 물론 설교를 통해 겸손을 강조하지만 천주교에서 강론하는 것과의 의미는 아주 극명하게 차이가 납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표현해서 그곳에서 설교 내용은 그냥 도덕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정도입니다. 근데 여기 성당에서 물론 강론 때에 어쩌면 그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슷하더라도 제가 왜 다르게 인식을 하느냐면요 물론 개종 전에도 제가 정신세계에 관한 책을 많이 접했지만 개종 후에도 천주교에서 발행된 책과 교부들의 주옥 같은 가르침이나 성인들의 말씀에서 교만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 보면 어떨 때는 두렵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에도 교만에 대해 무서운 말씀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렇습니다.

 

나름 지금까지 그런 상태로 제 머리 속에 인식이 되어 교만이라는 게 뭔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 신부님 앞에서 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에 대해 신부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을 드리는 과정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 말씀을 드리니 신부님께서 뜻밖의 답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겸손이라고 해서 그냥 속되게 표현해서 굽신굽신 하며 자신을 저 자세로 하는 게 겸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충분히 이해를 했는데요 글로 표현을 하려고 하니 내용이 아주 길어집니다.

 

그냥 아주 간결하게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상황에 따라 사실대로 표현을 하되 자신감과 프라이드를 교만이라고 표현을 하는 데에서 오는 인식에 대한 착오를 하게 되니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교만인지 아닌지를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여기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알아도 현실에서 제가 적용을 해보니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모르니 제가 신부님 표현대로 해봐도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교만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부님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우리가 교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알려드려도 수긍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삼천포로 샜습니다. 이 말을 삼천포 사람들은 제일 싫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관한 복음 표현 때문에 이렇게 사단이 났습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지키고 실행을 다 하고 또 그걸 지켜라고 하십니다. 다만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구체적인 예는 복음에 나옵니다. 여기서 그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평소에 이들과는 대립각을 세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보니 말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에도 모세가 등장합니다. 이때 모세에 관한 21세기 해설판 성경에서는 율법을 상징한다고 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엘리야는 예언자를 상징하고요. 이와는 여기서는 다르겠지만 그런 맥락에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탈출기 32절에 보면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나타나십니다. 이건 인간과 하느님의 만남이라고 교황청 성서위원회 보바티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인터넷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율법학자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씀이 나(예수님)와는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말 그 자체를 나의 말처럼 동일시하라고 하는 맥락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다만, 이들의 행동은 보여주기식의 행동이니 그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가르침은 좋으니 그건 내 말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고 실천을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바리사이들이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하면 모를까 실천을 하지 않으니 그 행동만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이들은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세상적인 명예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시는 표현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을 따라야 할 게 아니라 오직 한 분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스승의 가르침으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십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11절과 12절입니다. 근데 제가 봤을 때 어제 12절 이 한 절 때문에 한 시간 이상 고민을 했습니다. 예전에도 이 부분이 제가 가진 언어감으로는 좀 번역이 이상합니다. 일단 한국말의 뉘앙스에 맞지 않습니다. 한국말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다시 한 번 더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참조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건 좀 낫는데 복음에 보면 치명적인 번역상의 오류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건 한국말 자체에 그런 표현이 없지만 그래도 문맥상 이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가 있지 실제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데 저는 왜 그렇게 표현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는 모두 형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갑자기 남들로부터 스승이라는 말로 불리지 말기를 말씀하시면서 왜 너희는 형제라고 말씀하셨을까?를 고민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오늘 전체적인 복음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스승이라고 하는 위치는 남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가르침을 주면 모르는데 불완전한 가르침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위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명확하게 인용이 되지는 않지만 성경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 가르쳐주면 이것도 하느님으로부터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 어디에 나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능력 부족이라 다음에 이 부분을 찾아서 확실히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스승 노릇했다가는 큰일 날 수가 있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 말씀 다음에 너희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내용이 뜬금없이 말씀하신 의도는 아마 형제이니 바로 수평관계를 강조하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승과 제자처럼 그런 관계가 아니고 평등한 관계를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계에서는 높고 낮음의 위치가 정해지기 때문에 어느 일방 한 당사자는 자칫 그 위치를 잘 유지하지 못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시려고 하시는 그런 의미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오늘 복음 때문에 사실 어제 모세에 관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전체 복음 내용을 묵상하려고 했는데 이 부분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 복음이 나오면 한번 다시 묵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또한 말씀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숨은 의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중에 하느님께서는 알고도 실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책임도 분명 물으실 것 같습니다. 원래 세상 형법에도 그렇습니다. 이걸 법에서는 신분범이라고 하는데 어떤 신분으로 인해 형이 가중 처벌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원리가 적용된다면 많은 성경지식을 알고 있어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면 그것도 큰 낭패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서워서 그럼 말씀을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그런 형국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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