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1 조회수1,92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3월 11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예레 18,18-20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18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19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20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복음 마태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사람들은 교육과 학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직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만났던 한 청년이 생각납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는 성적이

조금 부족해서 점수에 맞춰 전혀

관심 없는 학과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모의 강요가 있었지요.

 학교가 중요하다면서 이 학교를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말이지요.

이 청년은 몇 년 뒤에 다른 학교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로 옮겼습니다.

부모님의 큰 반대가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선택에 계속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자기 일에 기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들의 섬김을 받는 자리는 아니지만

소소한 행복에 크게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부모의 강요에 따라

살게 되었다면 아마 평생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역시 후회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교육과 학력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성공의 도구로 생각하게 될 때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

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 당시에도 치맛바람이 있었나

봅니다. 이 어머니의 청은 영적

식별력이 전혀 없는,

 단순히 세상의 성공 기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그 옆에 있었던 다른

열 제자가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깁니다.

제자들 역시 세상의 성공 기준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주님 스스로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높은 사람,

첫째가 되려는 마음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주님은 몇몇 사람만 하늘 나라에서의

높은 자리에 앉도록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예외 없이 구원되어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성공의 도구가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인생 여정을

출발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칼릴 지브란)

미래는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

지금 20년째 인터넷에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라는

제목의 묵상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쓴 글의 양이 자그마치

A4 용지 10,0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양입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쓰게

되었던 묵상 글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의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 묵상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앞으로 20년을 더 글을 쓴다고

 예상하면 지금까지 썼던 만큼의

 글을 쓰게 되겠지요.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정도의

소재가 계속 있을까요?

글 쓰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닌데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끔찍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미래는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는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희망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하루하루가 이어져서

20년이 된 것처럼, 또 하루하루를

이어가다 보면 또 다른 20년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걱정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미래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부르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