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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부자와 라자로 (루가16,19-3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2 조회수1,596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6,19-31)

 

" '아브라함 할아버지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4~26)

 

살아생전에 병들고 굶주림에 지쳐 있었던자기 대문 앞의 거지 라자로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주제넘은 요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멸시했던 라자로를 통해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 달라고 한다.

 

차마 많은 것을 청하지 못하고 손가락 끝에 찍은 물을 구하는 부자의 상황과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이 된다.

지상에서 호의호식하며 배불리 먹던 부자는 이제 물 한 잔도 아닌 말라붙은 혀를 식힐 한 방울의 물을 구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특히 '식히게'로 번역된 '카탑쉭세'(katapsykse)는 뜨거워 메말라버린 혀를 식히고 촉촉하게 해달라는 뜻으로서 부자가 처해있는 곳이 얼마나 뜨겁고 견디기 힘든 곳인지 보여 준다.

 

살아생전 거지 라자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부자가 이제 자신의 비참한 처지로 말미암아 라자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상황이 역전된 현세와 내세와의 자리바꿈의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는 이유 부사절을 이끄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데부자가 왜 물 한 방울을 구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그는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오뒤노마이'(odynomai)는 '몹시 아프게 하다', '몹시 괴로워하다', '몹시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오뒤나오'(odynao)의 현재 수동태로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계속적으로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부자의 상황을 보여 준다.

 

이 고통은 절대자 하느님의 심판에 의한 고통이며여기서 불길은 죄인의 최종적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묵시19,20; 20,10; 21,8). 현세에서 매일 잔치를 벌여 사치와 쾌락을 일삼았던 부자는 죽음과 동시에 헤어날 수 없는 심판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져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애타게 부른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품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라자로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루카 복음 16장 25절에서 아브라함은 애걸하는 부자의 청원을 들어줄 수 없음을 설명한다.

 

'좋은 것들'로 번역된 '아가타'(agatha)의 원형 '아가토스'(agathos)는 '선한', '유익한', '아량있는'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부자가 받은 '좋은 것들'은 살아생전 그가 누렸던 부와 명성을 말하며동시에 그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배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하느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온갖 부와 명성과 즐거움을 누리면서도정작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부자는 현세에서 '주는 것'에 무관심했고오로지 '받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보면 된다.

 

아브라함은 서로 통교할 수 없는 공간상의 제약 뿐만 아니라세상에 있을 때 고통받던 라자로를 외면한 부자의 악함 때문에 부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위로를 받고'에 해당하는 '파라칼레이타이'(parakaleitai; he is comforted)는 '~곁에', '~가까이'라는 뜻이 있는 접두사 '파라'(para)와 '부르다', '초대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칼레오' (kaleo)의 합성어로서 '곁으로 부르다'는 뜻이 있지만본 단락에서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파라칼레오' (parakaleo)의 현재 수동태이다.

 

이것은 라자로가 계속적으로 외부로부터 위로함을 받는다는 뜻이다이러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느님(욥기15,11; 즈카1,17)으로부터 오는 완벽한 위로인 것이다(2코린1,3.4).

 

한편루카 복음 16장 2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부자의 애절한 청원을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말하는 '우리와 너희 사이'란 결국 저승과 낙원 간의 간격을 말한다.

'구렁'으로 번역된 '카스마'(chasma; a gulf; a chasm)는 '길게 갈라진 틈', '심연'이라는 뜻인데여기서는 실질적으로 구렁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보다는지옥과 천국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질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가로 놓여 있어'로 번역한 '에스테릭타이'(esteriktai; there is fixed)는 '흔들리지 않게 하다', '강화하다', '확고히 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테리조'(sterizo)의 완료 수동형으로서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그 구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그 누구도 그것을 옮기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강한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죽은 후에 처해진 운명은 아무도 그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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