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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2.“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9)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2 조회수1,467 추천수5 반대(0) 신고

 

루카 16, 19-31(사순 2 )

 

 

 

오늘 <복음>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극단적인 두 인물의 대조된 모습을 통해, 불신과 재물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로 초대합니다.

이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루카 16,20)

 

 

 

 

부자는 가련한 라자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자신과 라자로 사이에 골짜기를 파놓고 분리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승에서 파놓고 건너가지 않은 그 분리의 골짜기는 저승에서도 그가 건너갈 수 없는 분리의 골짜기가 되고 맙니다.

사실,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곧 자기 자신에 빠져 타인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는 가난한 라자로를 무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아마도 마음 한켠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보다 자신에 대한 보호와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참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코로나19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한 해에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2천명이 넘고,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은 3천명이 넘고, 독감으로 죽는 이들이 약 5천명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1만 3천명이 넘어도 타인의 고통에 무디어져 있으면서도 코로나가 자신의 안전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더 관심이 큰 것은 아닐런지요,

 물론 코로나19의 문제가 중하지 않다거나 약화시킬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만,  이러한 우리의 속내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입니다.

사실, 진정 무서운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타인에 대한 사랑의 부재라는 점일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이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니라, 선행과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곧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부유함(부자)=멸망, 가난함(빈자)=구원이라는 등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심판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하지 않은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시되 자신의 혀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자비를 입어 부자가 되었으니,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죽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6,24)라는 간청은 제가 자비를 베풀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청으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부자가 대문 앞에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 본 것은 자신의 호사스러움과 즐거움, 탐욕과 인색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형제들 사이에, 또 가난한 이들과의 사이에, 냉대와 무시와 무관심의 골짜기를 파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저승에서의 골짜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처지가 뒤바뀐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9)

 

 

 

부자는 이승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라자로를 보내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승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덧붙여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사실, 기적이 사람들을 회개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믿지 못함은 기적을 보지 못해서 혹은 듣지 못해서나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 보고 체험하고도 받아들이지를 않는 완고함 때문일 것입니다.

 곧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되다.”(루카 11,28)

 

 

 

한편,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라자로가 구원을 입은 것이 그가 남에게 특별한 선을 베풀었거나 해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혹은 그의 가난하고 고통 받은 삶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입은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을 입고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그렇습니다. 라자로가 은총을 입은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루카 16,20)

 

 

 

주님!

마음의 눈을 열어 타인의 처지를 볼 줄 알게 하소서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고, 자신의 혀만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게 하소서

재물을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고, 탐욕에 빠지지 않고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악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을 베풀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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