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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태21,33~43.45~4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3 조회수1,358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태21,33~43.45~46)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그러자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35~39)

 

'소작인들'로 번역된 '게오르고이'(georgoi; tenants; husbandmen)는 '게오르고스'(georgos)의 복수 주격으로서농토를 일정 기간 차용하여 일정한 비율의 세를 내고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을 가리킨다.

여기 포도원의 소작인들은 이처럼 주인과 계약을 마친 일꾼으로서유대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마르12,12; 루카20,19).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는 이 소작인들이 행한 악행이 세 가지로 묘사된다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동사들이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이다그러니까 여기서 핍박받은 종들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언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매질하고'로 번역된 '에데이란'(edeiran; beat)은 '데로'(dero)의 부정 과거형인데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는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레위1,6; 2역대 29,34; 35,11).

말하자면, '데로'(dero)는 맞지 않아도 될 매를 맞는 희생적 고난의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이다.

 

마태오 복음 21장 35절에서도 종들이 소작인들에게 맞는 것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구약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동물들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과 같은 희생을 말한다.

그리고 '죽이고'로 번역된 '아페크테이난'(apekteinan; killed)는 '아포크테이노'(apokteino)의 부정 과거형이다.

'아포크테이노'(apokteino)는 '죽이다'는 의미의 동사 '크테이노'(kteino) 앞에 강조하기 위해 '아포'(apo)라는 전치사가 결합되어 처절한 죽음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본문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겪게 될 순교적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로 번역된 '엘리토볼레산'(elithobolesan; stoned)은 '리토볼레오'(lithoboleo)의 부정과거형으로서 '돌을 사람이나 짐승에게 던지다'는 뜻이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의로운 박해를 받는 예언자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루카23,37; 사도7,58.59).

 

여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종들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을 사악한 방법으로 계속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된 소작인들은 바로 그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제 마태오 복음 21장 36절에는 주인이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팔린'(palin; again)은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음을 가리킨다.

주인의 종들을 잔인하게 죽은 소작인들을 즉각적으로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자비로운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있다.

 

'많은'으로 번역된 '플레이오나스'(pleionas; more than)는 '플레이온'(pleion)의 형용사 비교급으로서보다 많은 수의 종들이 파견되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비유되고 있는 소작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인내하시면서그들이 뉘우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또 한번의 기회를 허락하셨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완고하고 사악한 소작인들은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주인의 사랑과 인내를 저버리고처음처럼 주인이 보낸 종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아들은 존중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주인의 아들을 보내게 된다.

 

마태오 복음 21장 37절에서 '마침내'로 번역된 '휘스테론'(hysteron; last of all)은 어떤 일의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수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주인의 비참한 심정을 가리킨다.

 

여기서 '존중해 주겠지'로 번역된 '엔트라페손타이'(entrapesontai; they will respect)는 '엔트레포'(entrepo)의 미래형으로서, '엔트레포'(entrepo)는 '~안에'라는 의미가 있는 전치사 ''(en)과 '돌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트레포'(trepo)의 합성어로서 '빙 돌다',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가진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존경하다'는 뜻과 '부끄러워 하다','무시하다'는 두 가지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이 바뀌어예수님께 대해 공경해 줄 것을 바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기대감이 들어 있다.

특히 시제가 미래라는 것은 악한 소작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주인의 심정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21장 38절 이하에서 주인의 아들을 상속자라고 하면서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리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고자 한다.

여기서 '상속자'로 번역된 '클레로노모스'(kleronomos; heir)의 첫번째 의미는 '기업', '유산', '유업'(heritage)이다.

구약 성경에서 '유업'의 뜻을 가진 '나할라'(nahalah)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리키며이 땅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되었다(신명20,16; 21,23).

 

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에게 주신 가나안 땅을 하느님께서 주신 유업으로 알고자기 지파 안에서만 상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그러나 바빌론 유배기를 통해 가나안 땅의 유업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유업을 희망하게 되었는데그것은 의인들이 메시아가 도래할 때 갖게 될 것으로 믿었던 몫이었다(다니12,13).

 

이 유업에 대한 희망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결되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 때 새로운 유업을 가질 것을 기대했다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러한 유업을 희망하여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이러한 유업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적으로 이루어졌다(갈라3,16).

그러나 악한 소작인들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믿음으로써 영적인 유업을 차지하는 대신에 그를 맞서서 죽이려고 했다.

 

그 원인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아관이 죄에서 구원을 주시는 영신적 메시아관이 아니고자신들을 현실적인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여 영적인 유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크나큰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

    

 

코로나-19 를 통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루빨리 거두워 지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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