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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2]/야곱[3]/창세기 성조사[4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3 조회수1,273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 

 

이사악이 맏이 에사우를 축복하고자 마음먹는 장면의 첫 시작을 성경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사악은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27,1), 큰아들 에사우를 불렀단다. 아버지 이사악이 눈이 멀어져서 잘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통상 눈이 멀면 귀라도 밝아지거나, 아니면 손 맵시인 촉감은 살아있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이사악 노인네는 다른 어떤 것은 잘 몰라도 눈이 먼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야곱은 어머니 레베카의 정성 어린 도움으로 야곱이 아닌 에사우로 변장해, 형 에사우의 옷에다 어머니 레베카가 갓 잡은 염소 가죽을 걸치고, 아버지 이사악이 그토록 즐긴다는 고기 별미를 움켜쥐고는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가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해 주십시오,”(27,19)

 

이사악과 야곱의 첫 만남은 좀 왠지 서툴다. 야곱이 아닌 에사우와 이사악의 만남이면, 이 상황에서는 과연 어떻게 시작할까? 그렇다면 이어지는 에사우가 이사악을 만나서 나누는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버지, 일어나셔서 아들이 사냥해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해 주십시오.”(27,31) 적어도 이 마당에서는 에사우처럼 기뻐서 부름과 잡수시고, 그리고 주십시오.’라고 절로 말이 이어져야 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말이 그래도 길다 여겨지면, 적어도 아버지, 이것 드십시오.’라면서 어리광은 부려 보여야 한다.

 

야곱은 아버지하면서 그저 단 한 마디로 불렀다. 두려움의 표시가 역력히 드러난다. 마치 죄지은 이처럼, 평소 그가 보여 주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그러니 이사악도 덩달아 거두절미한 채, 앞뒤가 막힌 양 이상한 질문을 던진다.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 과연 아들을 면전에 두고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게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눈이 멀었다지만, 귀까지 어두워졌단 말인가? 그리고 집안 분위기도 어디엔가 좀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당시에 에사우는 이미 결혼까지 했다. 그런 아들을 앞에 두고 누구냐?’라고 묻는 건 사실 좀 그렇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이왕 벌어진 것, 야곱에게 어차피 축복해 주어야 할 판이니, 이사악의 모든 신체에 최면을 걸어둔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야곱의 답은 더 가관이다. 누구냐의 아버지 물음에, 의당 에사우입니다.’라면 족하다. 그런데 변장한 야곱은 제 발에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신시키려고 과민 반응을 보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이것이 형 에사우로 가장한 야곱의 기만이 보인 한계이다. 그러니 아버지 이사악의 의심이 계속될 수밖에. 그래서 이사악이 아들에게 내 아들아, 어떻게 이처럼 빨리 찾을 수가 있었더냐?” 하고 묻자, 그가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사악이 야곱에게 또 덧붙여 말하였다. “내 아들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인지 아닌지 내가 만져 보아야겠다.”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가까이 가자, 이사악이 그를 만져 보고 말하였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 그는 야곱의 손에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이사악이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사우냐?” 하고 다져 묻자, 그가 ,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인네 이사악이 눈이 멀어서인지, 아니면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당신 아들을 두고 실제 아들인지를 확인하는데 거의 시간을 다 소비했다. 그 기다리고 기다린 별미를 바로 앞에다 두고 자식 놈 신원 파악하느라 한참이나 보내는 걸 보면, 축복이 과연 중요하긴 중요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개입하셨기에 자연 지연되었을 수도. 어쩌면 야곱의 이야기대로,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기에”(27,20) 사냥도 빨리 잘 되었고, ‘아버지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시고자이사악의 오감을 거의 최면 걸리게 했을 수도. 그래서 이사악은 야곱의 변장과 속임에 넘어가 그를 축복하기로 했다.

 

드디어 이사악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너에게 축복해 주겠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그것을 가져다드리니 그가 먹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다드리니 그가 마셨다. 그런 다음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입 맞춰다오.” 축복 예식의 그다음 행위는 포옹 내지는 입맞춤하는 거다. 그것은 생명력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나.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사악은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였다. “보아라, 내 아들의 냄새는 주님께서 복을 내리신 들의 냄새 같구나.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뭇 민족이 너를 섬기고 뭇 겨레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는 네 형제들의 지배자가 되고 네 어머니의 자식들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고대 근동에서의 선조에게서 계약 또는 약속 형태로 내리는 축복은 기본적으로 넓고 비옥한 땅과 후손의 약속, 그리고 민족에 대한 거다. 그러나 지금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에게 받은 것에는 이런 게 빠져 있다. 이는 아마도 이 축복이 야곱의 것이 아닌, 에사우를 의도한 것일 수도. 다시 말해 이 이사악의 첫 번째 축복은 나름대로 그가 맏이에게 평소에 느낀 에사우를 위한 것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야곱에게 선포된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 이사악이 야곱을 하란에 있는 조카 라반에게 보내면서 당부한 두 번째 축복에서 그 진실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너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는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 일어나 파딴 아람에 있는 네 외할아버지 브투엘 댁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너의 외숙 라반의 딸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여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어,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시며,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너와 네 후손에게 내리시어,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28,1-4) [계속]

 

[참조] : 이어서 '3. 잃어버린 에사우의 복/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축복,별미,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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