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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5 조회수1,39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탈출 17,3-7

그 무렵 백성은 3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였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5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제2독서 로마 5,1-2.5-8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복음 요한 4,5-15.19ㄴ-26.39ㄱ.40-42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9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고3 때, 신학교에 갈 것이라고

친한 친구들에게 말하자 다들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기준에서 사제가 된 저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신학교를 외부와 단절된

 수도원을 생각했는지, 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어이없음, 놀람, 말도 안 됨.’
노는 것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제가 신부 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주변의 생각과

 달리 신학교에 들어갔고 사제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들어간 지 10년 만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의

 반응은 ‘불쌍하다’였습니다.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독신의 삶이 불쌍하게 보였나 봅니다.
이제 사제가 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친구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지금 만나는 친구마다 “부럽다.”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단순히

 가족이 없어서? 아니면 복잡한 이 세상

삶에 찌들어 있지 않아서? 그래서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해 보여.” 신학생 때, 그리고

신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어렵고 힘들게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삶 안에서 주님을

느끼면서 만족하고 기뻐하며 사는

행복이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면서, 또 주님과

함께하면서 이제는 남들이 보기에도

행복한 모습으로 비치게 된 것이지요.

그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들으면서 예수님을 더욱더 공경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고 또 판단했지만,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영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 여자는 그곳에서 발견한 생수를

 자기 안에 지닌 채 물동이를 버려두고

갑니다. 사실 처음 예수님과 만났던

시간은 정오였습니다. 가장 더울 때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여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했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들은 말씀을 고을로

 돌아가 전함으로써 여자는 복음

전파자의 일을 하는 사도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킵니다.

그러나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그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계속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는 못 배길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이다.

(토마스 에디슨)

하느님의 섭리

언젠가 ‘기독교는 어떻게

사의 승자가 되었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기 30년쯤,

예수님의 남자 제자 몇 명과

여제자 몇 명에 불과했던 세력이

300년 만에 200~300만 명으로

불어났고, 또 100년이 지나

3,000만 명으로 늘어난 것을

 학적으로 그 이유를 풀어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현상으로,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이유를 찾아서 콘스탄티누스 대제,

바오로 사도, 그 당시의 시대 상황들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외에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 책은 하느님의 섭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지만, 계속 읽으면서

하느님 없이는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믿으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착각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깨끗하게 칠해진 성모님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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