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야곱의 서원[8] / 야곱[3] / 창세기 성조사[5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9 조회수1,376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 야곱의 서원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기념 기둥은 고대 근동의 경신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의미, 즉 약속의 표징(31,51-52; 탈출 24,4; 여호 24,26-27), 죽은 이에 대한 기념(35,20; 2사무18,18), 또는 하느님의 현존(28,18) 표지를 지니고 있다. 이런 기둥들은 대부분 우상처럼 여겨질 우려가 있어, 나중에 철저하게 파괴되고 단죄된다(레위 26,1 참조). 여기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표지라고 여겨져, 그래도 베텔 성소의 경신례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돌에 일부 또는 전체적으로 기름을 붓거나 바르는 이유는,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보다 신성한 물건에 힘을 넣는다는 것으로, 주로 농경 정착 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한 올리브유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고는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이름은 루즈였다.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28,22)을 지닌 베텔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아주 중요한 성소 중의 하나이다(12,8 참조).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언제나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영원히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서원은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행하는 약속의 표현으로, 어떤 공동체나 조직의 책임자에게 서약의 형태로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창세기 시대의 서원은 통상 농경의 정착 생활을 하던 이들의 종교적인 행위였기에, 주로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인 성소 등에서 이루어졌다. 야곱의 서원은 기름 부은 돌기둥 앞에서 하느님께 밝히면서, 야곱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일종의 맹세 내용이다. 다만 그는 조건부 서원을 한다. 다시 브에르 세바로 무사히 귀환만 보장해 주신다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내용을 다짐한 거다.

 

어떻게 보면 조건이 참 단순한 것 같지만, 세부적으로 따지고 보면 참으로 좀 까다롭기 그지없다. 우선은 하느님께서 늘 저와 함께하신다고 하셨기에 말씀하신 그 약속이 꼭 지켜지면서, 제가 하려는 가는 그 길에 저를 지켜주시고, 또 밥 먹여 주시면서 옷가지를 마련해주신다면 이다. 요약하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에 의식주를 잘 챙겨주신다면, 당신께 제 할 몫을 꼭 하겠다는 거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조건이다. 어찌 보면 의당 하느님께서 야곱의 여정에 의당 꼭 챙겨 주실 일인데도, 조건부로 내세우니 어쩜 그럴듯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 야곱이 조건부로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무얼까? 일단 정리하면 단 세 가지다. 당신은 누가 뭐래도 제 하느님으로 여길 것이며,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영원토록 하느님의 집이 될 것이며,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모든 것에서 반드시 그 십분의 일을 꼭 바치겠단다. 감히 야곱다운 발상이다. 하느님께서 기억해주시는 것만큼은 자신도 헌납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친족 집으로 잠시 피해서 가는 그가 그래도 하느님과 이렇게 동행하겠다는 것은 그래도 참 다행이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먼저 손 내밀었기에 이마저 서원하였으리라.

 

사실 십일조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과 동시에 임금에게 바치는 세금을 가리킨다. 아브라함 할아버지도 조카 롯을 구한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와서는, 살렘 임금 멜키체덱에게 십일조를 했다(14,20 참조). 당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인 살렘 임금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의 승전을 축하하고자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라함은 복을 받으리라. 적들을 그대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단다.

 

성경에서 최초의 십일조 사례는 아브라함이 이렇게 경신례에서 멜키체덱 사제의 축복에 대한 자발적인 기부였다. 지금의 미사 봉헌 예물이다. 왜 십분의 일을 정했는지 그 범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관습으로 받은 것의 십분의 일을 봉헌하는 게 아마도 관례였지 않았나 싶다. 보통 성경에서는 제물로서의 십일조를 강조하나(신명 12,6.11.17; 14,22.28; 26,12) 일부에서는 십일조가 레위 지파 성직자의 몫이라 여기기도 한다(민수 18,21 이하). 이렇게 야곱이 서원으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성경 전체로 보아 처음인 것 같다. 그렇지만 그가 십일조를 실제로 행한 그 구체적 내용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야곱의 파란만장한 여정의 첫걸음에서 그는 하느님을 만나 변화한다. 하느님을 만나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활력과 열정을 받을 게다. 그의 서원이 비록 조건부이지만, 그의 다짐이 이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도 신앙의 첫걸음에서 나름으로 다짐한 각자의 서원이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가끔은 빗나가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회개와 기도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성숙할 게다. 그것은 창세기 야곱의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늘 함께하시기에. [계속]

 

[참조] : 이어서 '9. 라반 집에 도착한 야곱‘/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서원,경신례,베텔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