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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8,9~1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1 조회수1,069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8,9~14)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느님제가 다른 사람들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하느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9-14)

 

루카 복음 18장 1~8절의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 절망하지 말고 인내하며 항상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해 교훈을 주었다면루카 복음 18장 9~14절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대조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스스로 의롭다고'에 해당하는 '에프 헤아우토이스 호티 에이신 디카이오이' (eph' heautois hoti eisin dikaioi; in themselves that they were righteous)에서 '에프 헤아우토이스'는 직역하면 '그들 자신들'로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위선적인 의()를 행하는 자들이었다(마태6,1).

 

고전 희랍어 문헌에 보면, '의로운 자'란 그 행위가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구조와 조화를 이루고신들과 이웃들에 대한 정당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를 말했다그러한 의무 이행은 그 사람을 불의한 자들과 구별해 주는 기준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해야 할 정당한 의무도그리고 이웃에게 행해야 할 진정한 사랑과 공의도 완벽하게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의로운 자라고 불렀다(루카20,20).

 

아마도 그들은 율법에 해박하였고비록 위선일 수밖에 없었지만적어도 그들 스스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열성적인 율법 이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저버림으로써하느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지도 못하면서껍데기 외형적 행동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신들의 고정 관념의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며스스로를 의롭다고 높여 세우는 위선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이었는데, '업신여기는'으로 번역된 '엑수테눈타스'(eksouthenountas; despised; looked down on)는 '경시하다', '얕보다'는 뜻을 지닌 동사 '엑수테네오'(eksoutheneo)의 현재 분사로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에 해당하는 '호이 로이포이 톤 안트로폰'(hoi loipoi ton anthropon; other men)는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데그들은 자신들 집단 외에는 모두 의롭지 못한 부정한 자들로 여기는 극히 독선적이고 편협한 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

 

루카 복음 18장 10절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모든 도시의 건물들 위에 높은 지대인 모리야 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고또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에 대한 외경심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보통 세 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현재의 시각으로 말하자면오전9정오오후3시이며유대의 시간법으로는 각각 제369시였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기도하던 장소는 성소가 아니라 성전의 뜰로서 '여인의 뜰'이라고 불리워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리는 루카 복음 18장 13절의 '멀찍이 서서'라는 표현을 볼 때, '여인의 뜰'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기도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중 하나는 '바리사이'에 해당하는 '파리사이오스' (pharisaios; a pharisee)이고다른 하나는 바리사이와 확연히 구분되는 '세리'에 해당하는 '텔로네스'(telones; a publican; a tax collector)이다.

 

바리사이는 율법의 외형적 준수를 중요시하던 당파로 자신들 스스로에 대하여 의롭다고 여겼지만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과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반면에 세리는 로마 정책에 따라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수탈하언 자로서사람들에게는 죄인으로 여겨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자책하고 있는 그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바리사이는 의()를 대표하는 자처럼세리는 마치 부정과 불의의 대표처럼 여겨졌다.

 

한편루카 복음 18장 11절에 나오는 '서서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도자세였다여기 '서서'에 해당하는 '스타테이스'(statheis; stood)는 '서다', '두다', '위치하다'는 뜻을 가진 '히스테미'(hystemi)의 과거 수동태 분사이다.

 

루카 복음 18장 13절의 세리가 서서 기도했다는 표현이 능동형으로 쓰인 것과 달리바리사이의 경우에 수동태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것은 바리사이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려고즉 자신을 드러내고자 의식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태도를 암시한다.

 

그리고 바리사이는 '꼿꼿이서서 혼잣말로 기도한 것으로 나오는데원문에는 '꼿꼿이'가 '프로스 헤아우톤'(pros heauton)이다여기서 '프로스'(pros)는 '~에게로 향하여'(towards)라는 뜻의 전치사이며, '헤아우톤'(heauton)은 '그 자신'(himself)이라는 뜻의 재귀 대명사이므로, '그 자신에게로'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자신을 치켜세우면서 기도했다는 의미도 있고문맥상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무리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자신의 자랑거리만을 늘어놓으며 하느님께 거만하게 기도했던 것으로도 보며혹자는 바리사이가 하느님께 아닌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이제 바리사이는 세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서 기도하는 것으로 나온다.

'강도 짓'에 해당하는 '하르파게스'(harpages; robbers)는 형용사로이리처럼 '탐욕스러운', '게걸스럽게 먹는'이라는 뜻이며명사로는 '강도', '사기꾼'이라는 뜻이 된다.

 

그 당시 세리는 로마에 고용되어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일을 했으며그래서 세리는 지배자들인 로마보다 더 악하고 불의하다고 여겨졌고동족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더군다나 단순히 로마에서 원하는 세금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세금 외의 돈을 뜯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바리사이도 너무나 잘 알기에 세리의 죄를 간접적으로 들추어내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세리는 '강도짓뿐만 아니라 '불의'를 저질렀다고 지적받는다.

'불의'에 해당하는 '아디코이'(adikoi; unjust; evildoers)는 정의를 해치거나 범하는 자들에 대한 표현으로서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속임수로 대하는 행동을 가리킨다그리고 '간음'에 해당하는 '모이코이'(moichoi; adulterrers)도 '강도짓'과 '불의'와 다 연결될 수 있는 범죄이기에 여기서 나열한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강도짓을 일삼았고(마태23,14),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한 '불의한 자들'이었고(마태23,28), 여자를 보고 음란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신다(요한8,7~9; 마태5,28).

 

루카 복음 18장 11절에서 바리사이는 세리의 죄를 지적하면서 자신들은 이들과 구별되는 자로서 의롭다는 것을 드러낸다바리사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회개해야 할 것이 없었다그리고 부족한 것이 없기에 구할 것도 없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루카 복음 18장 12절에서 말한다.

 

구약에서는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단식(레위16,29~30; 민수29,7)하도록 되어 있지만바리사이들은 율법의 규정에 없는 경건의 습관으로 일주일에 두 번 단식했다고 자랑한다.

바리사이들은 시나이 산에 계약을 맺으러 올라간 날로 여겨지는 목요일과 내려온 날이라고 여겨지는 월요일에 단식했던 것이다.

 

사실 모든 재산과 소득의 십일조를 준수하는 바리사이들은 신명기 14장 22~23절의 규정을 능가하는 봉헌을 했던 것이다여기서 '단식'하다에 해당하는 '네스튜오'(nesteuo; I fast)와 '십일조를 바치다'에 해당하는 '아포테카토'(apodekato; I give tithes ;I give a theuth of)가 바리사이들의 자랑거리인데그들은 하느님 앞에 겸손하기보다는 자신만이 의롭다는 교만과 자신이 정작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한편루카 복음 18장 13절에서 세리는 죄인과 같이 취급당하여 거룩한 성소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부끄러웠다또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바리사이 옆에 서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었다.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의 일반적인 자세인데세리는 눈을 들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기를 원치도 않았다.

 

세리는 자신의 더러움과 비천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에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으며겸손함과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의 자세를 가지고 기도했다그의 기도의 내용은 너무나 단순했으며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루카 복음 18장 13절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힐라스테티' (hylastheti)는 '힐라스코마이'(hylaskomai)의 수동태 명령형이다이 단어는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게 만들다', '자신과 화해시키다'는 뜻인데가슴을 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참회와 겸손의 극치이다이것은 '하느님자비를 베푸소서', '호의를 가지소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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