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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1 조회수1,39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호세 6,1-6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신부가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또 강론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느 신부님께서는

 “미사 강론만 없어도 신부로는

사는 것 정말 할만해.”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의 경우는 어떤 체험을 한 후

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서품받고 보좌신부로 첫 본당에

나가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사제관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며 병원에 와서 병자성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선종하신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치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주임신부님께

새벽에 병자성사를 주고 왔다는 것과 함께,

 저의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주시더군요.
“인간의 위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진정한 위로는 하느님만 가능한 것이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자성사 주는 것까지야.”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자기 칭찬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

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이 존경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모습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다른 이에게 큰 모범이 되는

 행동을 했어도 그 행동 자체의

의미가 자기 자랑을

 통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의사를 찾아간 환자가 자기

자랑만 하고 있다면 또 남의

상처만 이야기한다면 제대로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환자는 오로지 자신의

아픈 상처만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선 우리는 바리사이와

다른 세리의 모습을 취해야 합니다.

그는 바리사이와 달리 자기 상처를

감추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드렸습니다.

이러한 겸손한 모습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닌,

세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인슈타인)

주님의 뜻 실천하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더 자자’라는 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늦잠을

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는 변화에 필요한

초기의 힘인 ‘활성화 에너지’는

그 운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평균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새벽에 일어나는데 드는

활성화 에너지는 기상 이후의

활동(예를 들어 기도, 독서, 운동...)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95%의 사람들이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오늘 점심으로 뭐 먹을까?”

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 뭐 먹고 싶은 기분일까?”라는

기분, 감정을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정에 지배받고 있다는 것은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 감정에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표를 향해 행동하고 싶은

본능이 생기는 순간 곧바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많은 여건이 방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몸을 움직여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꽃 피는 봄인데,

미사를 아직도 함께 봉헌할 수가 없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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