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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2 조회수1,51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제1독서 1사무 16,

1ㄱㄹㅁㅂ.6-7.10-13ㄴ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이

6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제2독서 에페 5,8-14

형제 여러분,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복음 요한 9,1.6-9.13-17.34-38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6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우리가 하루 동안 하는

모든 행동은 과연 내 생각과

감정과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이를 연구 조사해보니 43%가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 욕구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이 그렇게

 많은 것이고, 단지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만들어 갈 뿐이었습니다.
43%의 습관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행동 양식을 기억하면서

보다 올바른 습관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성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성인

 성녀들은 이 방법을 습관처럼

간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습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자신의 영광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어떤 영광을

쫓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를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세상 안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대답해주십니다. 그리고 한 처음에

창조하실 때 그러셨던 것처럼 흙을

이용하여 그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치유가 이루어진 날이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의 고통이

없어진 것을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루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것만을 물고 늘어질 뿐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판단은 하느님의

일을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정합니다.

치유 받은 남자는 바리사이들의

물음에 사려 깊게 대답하는 동시에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치유 받은 남자를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습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바리사이의

모습이 바로 영적인 눈멂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눈이 먼 것은 아니었을까요?
먼저 하느님의 일을 봐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용기를 내십시오.

선뜻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단호히 “예수님 만세”를

외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있습니다.

네 살 아이의 자제력 시험으로

널리 알려진 실험입니다. 작

은 마시멜로를 하나씩 준 뒤에

15분간 받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면 마시멜로 2개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75%의 아이들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나뿐인

 마시멜로를 먹어 치운 것입니다.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제력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성장한 후의

모습을 조사합니다.

그 결과 자제력 있는

 아이가 커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실험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마시멜로를

보여줬고 어떤 아이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것입니다.

시나리오는 똑같았습니다.

마시멜로를 보지 않은 아이는

 평균 10분을 기다릴 수 있었고,

보았던 아이는 평균 6분을 기다렸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제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황을 어떻게 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뜻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을 원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죄’라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시작부터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악에게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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