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민수21,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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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03-31 | 조회수1,08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민수21,4-9) 모세오경의 넷째 책의 히브리 이름은 '베미드바르'(광야에서)이다. '광야에서의 여정'이라는 책 내용과 어울린다. 우리말 이름 민수기(民數記)는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의 이름 '아리트모이'<(인구)수들>에서 왔다. 그리스 이름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두 번 있었던 인구 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스 이름 따라 이 책의 주역들에 초점을 맞추어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부분(1-25장)은 반역의 구세대를 묘사하고, 둘째 부분(26-36장)은 희망의 신세대를 묘사한다. 반면에 히브리어 이름 따라 삶의 자리에 초점을 맞추어 민수기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1-10,10)은 시나이에서 광야 여정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시나이 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그분을 합당하게 모시고(성소에 대한 규정) 섬겨야 하는지(제물에 대한 규정)를 다룬다. 둘째 부분(10,11-21,35)은 시나이에서 모압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세째 부분(22-36)은 모압에서 가나안 진입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요르단 강 동쪽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미 정복한 땅과 앞으로 정복할 땅의 분할 원칙이 소개된다.
오늘 독서는 민수기 21장 4ㄴ-9절로서 둘째 부분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을 떠나 광야를 가로질러 마침내 요르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는 광야의 여정을 다루는데, 여기서는 구세대의 반역이 중요한 주제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권위와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한다.
11장에서 백성은 음식에 대해 불평한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하는 불평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빵과 곁들여 먹던 갖가지 양념과 생선과 채소가 그리워서 하는 불평이다. 광야에서 그런 것을 먹겠다는 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억지다. 12장에서는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을 한다. 13-1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과연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안전하게 이끄실 수 있는가 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심한다.
하느님은 백성의 이런 불평과 반발에 대해서 엄한 벌을 내리신다. 이집트에서 막 탈출했을 때 하던 불평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받아 주시고 해결책을 제시하셨지만, 여기서는 그동안 백성이 하느님의 능력과 보살핌을 충분히 보아왔음에도, 여전히 불신과 반역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들을 엄하게 다스리신다.
하느님은 불 뱀들을 통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였다.(21,6) 그리고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되었지만, 모세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한 이들의 소원을 들어 모세가 중재자의 기도를 바치니(21,7)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 "너는 불 뱀을 구리(청동)으로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21,8)
불 뱀은 죄와 그 벌로서의 죽음을 상징한다. 기둥 위에 매달린 구리뱀도 그들의 죄와 죽음을 의미하나, 그들의 죄를 다 뒤집어쓰고 대신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온다. 바로 신약의 예수님의 구원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십자가 구속사업을 미리 예표한다.
인류의 첫 사람이 교만과 불순명으로, 지선악과 나무에서 금한 실과를 따 먹어, 이 원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 왔는데, 이제 나무로 말미암아 지은 죄를 나무로 속죄하는 구원의 길을 성부께서 열어 주셨다. 예수님이 우연히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만지고 못과 망치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인류 구원이라는 십자가 나무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우연히 방을 청소하다가 메모를 한 성경 말씀을 발견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 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르9,43-47) 이 성경 쪽지에서, "네 손"이란 글자에는 "예수님의 못박힌 두 손", "네 발"에는 "예수님의 못박힌 두 발", "네 눈"에는 "예수님 자관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을 적심"이란 메모를 발견했다.
오늘 같은 날, 우리 영혼의 교과서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예수님 십자가 그림에는, "How much do you love me?"(당신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This much"(이만큼)이라고 쓰여 있단다. 십자가 안에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크기와 깊이가 다 들어있음을 관상해야 한다.
로마에도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이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 조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모우면, 한 방 가득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가짜도 많다는 것이다. 십자가 나무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제물로 거기에 달리셔서, 성부 하느님께 봉헌되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가, 예수님께서 못박혔던 진짜 십자가 나무 조각이니, 여기에 친구하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더라도, 혹세무민하는 말에 넘어가는 저급한 신앙생활을 하지말고, 예수님 십자가의 구속의 정신, 사랑의 영성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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