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진실로 뉘우치고 하느님 자비에 신뢰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습니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8 조회수1,589 추천수4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진실로 뉘우치고 하느님 자비에 신뢰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습니다!

거룩한 성주간 복음 말씀 안에는

예수님의 수난 여정의 핵심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제 요한복음에 이어

오늘 마태오 복음은 배신자

유다를 소개합니다.

유다의 배신 행위나 그로 인한

비참한 인생의 말로는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기에,

이제 그만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생각도 자주 듭니다.

그러나 교회 전례는 매번

성주간 때 마다 유다의 배신 사건을

또 다시 들추어냅니다.

그 이유는 유다와 오늘

우리들 사이에 지니고 있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의

양 극단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유다를 통해서 한 인간

존재가 얼마나 깊은 죄의

나락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다처럼 악행의 극단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서 종종 유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장엄히 발했던 서원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결혼생활을 하시는 분들

혼인 서약 때의 그 열렬한 사랑의

맹세가 변함없이 현재진행형인가요?

유다도 한때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은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머리도 잘 돌아갈뿐더러

추진력도 있어서, 사도단의

총무 역할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인류 구원 사업의

첫째가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하고

구원되는지를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유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사실 한 가지!

유다는 예수님과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랬던지, 그러한 회심과

새로운 삶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유다는 야심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내면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개인적인 바람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거부하셨던

지상에서의 왕권과 그에 따른 세속적인

출세를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던 유다였기에

어느 순간 스승님의 노선과

자신의 노선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유다는 스승님께서 거듭

강조하시는 수난과 죽음의

십자가 길을 원치 않았습니다.

유다의 배신 그 이유는 분명해집니다.

유다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메시아에 대한 자신의 선입관과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결정적으로 배신하는 순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얼싸안고

입을 맞춥니다.

유다는 적대자들과 미리 각본을

꾸민 것입니다.

내가 입을 맞출 사람이 예수이니,

그를 체포하면 됩니다.’

유다는 존경과 친교,

일치와 사랑의 표시인 입맞춤을

반대로 악용한 것입니다.

그런 유다의 행동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

(마태오 복음 2650)

아직도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선한 얼굴에

유다는 전율합니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유다는

크게 가슴을 치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군인들이 무례하게 예수님을 다루는

모습에 송구한 마음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너무나 후회스러웠던 나머지

유다는 계약금으로 받은 은전

30냥을 되돌려주려고까지 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유다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유다가 배신의 입맞춤을

한 후에도 스승님과 다시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보십시오.

한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후회하고, 또 참회하고,

또 뉘우치는 노력을 통해

참 제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다는 뒤늦게

후회까지는 했지만,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하느님 자비는

우리 죄를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절망의 깊은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며,

그 결과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유다는 우리 죄인들을 언제나

용서하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드로처럼 구원과 용서를

받기 위해 하느님께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살만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실로 뉘우치고 하느님 자비에

신뢰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당신 아들조차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결정적으로

배반하는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여전히 사랑하시며, 또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