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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9 조회수2,75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4월 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제1독서 탈출 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제2독서 1코린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 요한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많은 사람이 후회합니다.

그렇다면 이 후회는

 언제 하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

갖게 되는 감정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충실한 사람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어떤 청년이 자신의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어서 힘들다는 말을

 제게 합니다. 당연한 사랑인

줄로만 알고 여자 친구에게

소홀했었음을 그래서 이별

통보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여자

 친구에게 충실하게 해 줄 것이라며

후회합니다. 사랑의 관계라는

현재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만났던 어떤 자매님도

생각납니다. 이분은 암 말기

 판정을 받고서 자기 삶에 대한

후회가 가득했습니다. 병원에서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제까지 사는 것이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했고 봉사 한 번 하지

못했다면서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합니다.
고해성사를 받은 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정말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픈

 환자들에게 말도 건네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왔습니다.

본인도 죽을 만큼 아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가는 마지막 순간에 아주

 편안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했기에

 후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 만찬 성목요일인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지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십니다.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의

발까지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들

사이의 구분과 분열과 불화를

없애는 겸손을 가르치고자

스스로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반석으로 세워주신

베드로는 이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의 친교를 위해서는

당연히 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주인의

시중에 깜짝 놀라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는 말에 더 강력하게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겸손의 모습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받으려는 욕심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은

자신을 높이는 삶이 아닙니다.

또 많은 것을 갖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보여 주신

겸손의 삶, 그리고 교만의

올가미를 과감하게 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지금을 충실하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으며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충실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서머싯 몸)

사춘기

어느 자매님께서 사춘기인 딸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이제까지 말썽 한 번 친 적 없고,

부모의 말에 순종적인 아이였는데

요즘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두 번은 겪게 될 일일 것입니다.

사실 본인도 자신의 부모에게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자기 자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를 직접 경험하게 되니

 더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본 사춘기에 대해

해석을 떠올려 봅니다.

동물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납니다.

왜냐하면 독립을 돕는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독립을 돕는 호르몬이

나오고 특히 인체 성장이

끝났음에도 부모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몸에서는 계속해서

독립하라고 신호를 보내니,

부모 곁에 있으면서

보호와 도움을 거절하는

사춘기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 자체에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혼란

속에서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성향을 보일 뿐입니다.

따라서 따끔하게 혼내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훈계만으로

 절대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보호와 도움을 줄여가면서

아이의 독립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을 먼저 찾아봐야 합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허용하고

그 안에서의 본인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른 아이’ 취급보다는,

진정으로 인격 자체를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춘기를 겪게 되면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세족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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