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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만찬 성목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9 조회수2,165 추천수0 반대(0) 신고

 

원래대로라면 오늘 저녁에 미사가 있다면 주님 만찬 미사를 드리게 될 텐데 아쉽게도 방송으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전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매일미사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는 생략하려고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길이 당신 운명이라 가셔야 하겠지만 남은 제자들이 잘 해줘야 할 텐데 마음속으로는 미덥지 않은 면도 있으셨을 거라고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호자 성령이 다시 인도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심이 되실 겁니다. 마지막에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제자들을 위해 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가르쳐주시고 떠나셔야 할지 말입니다. 어쩌면 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가장 간절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두 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그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세족례를 통해서 서로 섬기고 아껴주는 마음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강조하신 이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한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복음 서두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때를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위해 식탁에서 일어나십니다. 이때의 예수님의 심정을 묵상하면 그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저는 참으로 비장한 마음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복음은 그냥 단순히 물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물은 그냥 물이 아닐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눈물어린 호소가 담겨 있는 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눈물과도 같을 겁니다. 제발 나의 간절한 바람이니 내가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주는 이 물은 그냥 물이 아니고 나의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는 하나의 절규라고 내심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단 하나, “너희가 서로 형제를 사랑하고 섬겨주는 것이란다.”라고 간절한 호소일 겁니다.

 

베드로에게 먼저 하려고 하시지만 베드로는 처음엔 완강히 거절을 합니다.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바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일은 종이나 하는 일이니 응당 그리하여야 할 모습일 겁니다. 베드로는 이때 인간적인 생각에는 자신의 그런 행동이 좋은 표양이 될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의 깊은 뜻이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걸 몰랐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하시는 말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하시자 그제서야 응하게 됩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는 이제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라고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셨을 때 저는 나름 이상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 상황을 이용하셔서 유다를 향해 뭔가 메시지를 주시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깨끗하긴 하지만 다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바로 유다를 상징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이때라도 유다가 회개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발도 씻어주셨을 겁니다. 결국 이 말씀은 마지막까지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표현일 것 같습니다. 유다는 끝내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그런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을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에서 본받아야 할 겁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을 겁니다. 무딘 마음을 숫돌에 칼을 갈 듯이 갈고 갈고 해야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가 있었지만 몸소 실행을 하신 것은 그만큼 본을 보여주셔서 그걸 지키게 하려고 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왜 하필이면 발일까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손도 있고 한데 말입니다. 나름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는 시선이 아래로 향해야 합니다. 또 몸 자세도 숙여야 합니다. 바로 발을 씻어주기 위한 모습이 한편 겸손을 상징하는 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연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습에는 사랑과 겸손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2독서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기억하며 행하라고 하신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한번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죽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내용입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슬픈 내용이겠지만 죽음 너머에 부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볼 때 단순한 죽음만 바라본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정말 너무나도 가혹하고 처참한 죽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우리의 죄를 당신의 생명과 맞바꾸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십자가 형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젠 우리는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볼 때마다 우리가 살면서 죄를 지을 때마다 또다시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는다는 걸 가슴으로 알아야 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뜻을 받들어 모실 수가 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었다고 할 때가 늦지 않았다는 말처럼우리는 전례시기에 맞추어 지금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되돌아보며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힘차게 다시 새롭게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은총을 간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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