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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52,13-53,1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0 조회수1,698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52,13-53,12)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병고에 익숙한 이었다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 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의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53,3-7)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병고에 익숙한 이었다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사53,3)

 

'그는 멸시받고'에 해당하는 '니브제'(nibze)의 원형 '빠자'(baza)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이 주님의 종이 그들에게 왔을 때 메시야로 인정할 만한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판단하여 무시하고그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멸시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그는 배척당할'에 해당하는 '와하달'(wahadal)의 원형 '하델'(hadel)은 '거절된'이라는 의미로서 '멸시받고'라는 표현과 같은 뜻이다.

'고통'에 해당하는 '마크오보트'(makobot)의 원형 '마크오브'(makob)는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이다(탈출3,7; 이사53,4).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의 진리를 배척하는 사람들로 인해 메시야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것을 암시한다(마태23,37~39). 

또한 '병고'에 해당하는 '홀리'(holi)는 흔히 육체적 질병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신명7,15; 2역대21,15; 이사38,9).

 

이 두 표현은 함께 사용되어 인간이 죄로 인해 경험하는 세상의 각종 고통과 고난을 나타낸다.

이러한 분문은 주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순수한 인성을 지니신 분임을 잘 보여주며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고통을 경험하셨으므로 인간의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은 사람들에게 철저히 배척당하고 외면당하는 모습을 회화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보통 이것을 두가지 의미로 해석하는데사람들이 메시야에게 자신들의 얼굴을 숨긴다는 의미와 메시야가 자신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숨긴다는 의미이다.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라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메시야가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있을 수 없는 일즉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메시야가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을 당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하느님께 매 맞은 자천대받은 자로 여겼다.'(이사53,4)

 

여기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 53장 9절까지는 주님의 종의 고난을 예언하며그 고난이 대속을 이루기 위한 고난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전반부인 이사야서 53장 4~6절에서는 대속 고난을 위한 주님의 종의 고독하고도 처절한 희생을 부각시킨다.

 

인간은 죄악을 범하여 하느님의 친교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메시야는 그 인간을 대신하여 매를 맞고찔림을 당하고죽임을 당하시게 되는 것이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며(창세2,17; 로마6,23),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는 것 (레위17,11; 히브9,22)이 영원불멸의 원칙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약 시대에는 양과 송아지를 희생하는 제사 제도를 주셨지만동물의 피가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씻을 수는 없다(히브10,4.11).

동물의 피를 드리는 제사는 사람의 죄를 생각하게 하는 기능일 뿐이다(히브10,3).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참된 것의 그림자로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동물 제사 제도를 허락하셨으며(히브8,5; 9,11), 때가 되어(갈라4,4) 온전한 희생 제물의 자격을 갖추신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어 단 한번의 제사로써 완전한 속죄를 이루게 하셨다 (히브9,12; 10,12.18).

그리스도가 단 한번 죽어 피를 뿌림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바칠수 있는 것은 그가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히브4,15).

 

이사야 53장 4~6절은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 죽음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병고'(홀라예누; holayenu)와 '우리의 고통'(우마크오베누;umakobenu)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각각 이사야서 53장 3절의 '병고'와 '고통'에 해당하는 원어와 동일한 어근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메시야가 하느님의 백성이 겪는 그 병고와 고통을 '대신 메고 갔으며', '대신 짊어졌다'는 것을 묘사하는 동사는 '나사'(nasa)와 '쎄발람'(sebalam)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바빌론 우상의 무능과 하느님의 참 구원자되심을 밝히는 이사야 46장 1~7절에서 반복 사용되는 단어와 동일하다.

 

그곳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방 바빌론의 우상 숭배자들이 그 우상을 어깨에 매고 들어 나르는 것과그에 반해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을 품에 안아 보호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본문의 이 두 단어를 번갈아 사용하였다.

그런데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그의 독생성자이며 대속의 사명을 감당할 주님의 종에게 인류의 병고와 고통을 대신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짊어져야 할 그 병고와 고통을 완전히 덜어 주심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이방의 종교가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 지우는 것과 대조되는 하느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여 준다.

주님의 종 메시야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병고와 고통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를 통해 직접적인 혜택을 얻는 우리 인간은그를 보면서 그 자신의 죄 때문에 징벌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사53,5)

이 구절만큼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생하게 예언하는 구절도 없고이 구절만큼 인간이 하느님께 범한 죄악의 심각성을 현저하게 드러내주는 것도 없다.

 

'찔린 것'을 묘사하는 '메흘랄'(mehlal)의 원형 '할랄'(halal)은 문자적으로는 구멍을 뚫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메시야가 당할 고난과 고통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인데주님께서 가시관으로 머리에 찔림을 당하고대못으로 손과 발에 못박힘을 당하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메시야의 이러한 고난과 고통이 모두 우리의 '악행때문이다'우리의 악행 때문이고'에 해당하는 '밉페샤에누'(mippeshaenu)의 원형 '페샤으'(peshah)는 변절하고 반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2열왕1,1; 이사1,2; 43,27).

즉 사소한 실수나 연약함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가 으스러진 것은'에 해당하는 '메둑카'(medukka)의 원형 '따카'(daka)는 단순히 피부가 상하는 정도의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이 단어는 짓밟혀 뼈가 완전히 으스러지는 치명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4,19; 22,9; 이사3,15;19,10).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메아오노테누'(meaonotenu)의 원형 '아온'(aon)은 '페샤으'와 마찬가지로 주 하느님을 배반하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 등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죄악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문의 '징벌'에 해당하는 '무싸르'(musar)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바로 잡기 위해 근실히 징계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잠언13,1.24; 15,5).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쉘로메누'(shelomenu)의 원형 '샬롬'(shalom)은 단순히 전쟁과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행복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써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직접 하느님의 징벌을 받고 그 잘못된 것으로부터 돌이켜야 했다그러나 그 징벌의 댓가는 죽음일 수 밖에 없기에 하느님의 징벌을 직접 받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돌이킬 수 있게 되었고자신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고하느님과 온전한 관계의 회복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상처로'(개신교그가 채찍에 맞음으로)에 해당하는 '우바하부라토' (ubahabrato)의 원형 '합부라'(habbura)는 매질과 큰 상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육체적 고난을 상기케 한다 (마태27,26~30; 마르15,15.19; 요한19,1~3참조). 그러나 이 단어는 이러한 육체적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영적 고난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았다'에 해당하는 '니르파'(nirpha)는 '라파'(rapha)의 수동형으로서 인간이 어떠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의 수혜자가 됨을 말한다.

이것 역시 단순히 인간의 육체적 회복뿐만 아니라 정신적영적인 회복을 다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의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이사53,6)

 

원문상으로 본절은 '우리는 모두'로 시작하여 '우리 모두'로 끝나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는 것은 바로 앞의 탐욕만을 생각하면서 한치 앞의 위험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영적 근시안과 줏대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함께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인간의 영적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양은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어 먹을 때 바로 앞에 있는 풀에만 신경 쓸 뿐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아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양은 다른 양들이 놀라 허겁지겁 뛰어 달아날 때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면서 덩달아 달아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거룩한 삶으로 영원을 준비하기보다 바로 목전의 탐욕에만 급급하여 범죄하기를 쉬지 않는 인간의 죄성과자신이 가는 길이 멸망인지도 모르고 다수의 사람들이 가니까 덩달아 따라가는 인간의 어리석음(마태7,13)이 양의 비유를 통하여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길을 잃고'에 해당하는 '타이누'(tayinu)의 원형 '타아'(taa)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본문에서는 영적 의미로 진리의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인생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떨어지게 하셨다'에 해당하는 '히프끼아으'(hiphgiah)의 원형 '파가으'(pagah)는 두 당사자가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탈출23,4; 민수35,21).

본문에서는 사역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자신의 단호한 의지로써 우리 모든 사람의 죄악을 주님의 종에게 떠넘기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이러한 예언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하느님의 경륜 가운데 계획되고 섭리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53,7)

주님의 종 메시야가 당한 수난이 그에게 합당하지 않는 수난이며 희생이란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 수난을 자발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저항하지 않는 인내와 순종의 정신은 그를 구세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삶의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만물을 주도적으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주 하느님의 뜻을 겸손히 따르는 자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학대받고'에 해당하는 '닉가스'(niggas)의 원형 '나가스'(nagas)는 원래 강제권을 발동하여 억지로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탈출3,7; 5,6; 39,7).

'천대받았지만'에 해당하는 '나아네'(naane)는 '억지로 시키다', '괴롭히다', '천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나'(ana)의 수동형이다이것은 주님의 종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큰 고통을 받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어린 양'에 해당하는 ''(se)는 주로 번제 희생으로 바쳐지는 어린 양 (창세22,7; 탈출34,20; 레위5,7) 혹은 파스카(유월절과월절)때 잡았던 어린 양(탈출12,4)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것은 메시야가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1,29)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메시야는 그가 당하는 고난이 부당하고 억울한 고난인 것을 알면서도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양이 입을 열어 울지 않는 것처럼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희생적 이미지의 양으로 묘사된 것이다.  양은 자기 몸에서 털이 깎여 나갈 때에도 울지 않는다.

 

여기서는 털을 깎기에 아주 적합한 암양(어미양)을 의미하는 '라헬'(rahel)이라는 단어가 쓰여졌다그리고 '잠자코'에 해당하는 '네엘라마'(neelama)의 원형 '알람'(alam)은 원래 곡식단 같은 것을 동여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창세37,7).

주로 입을 단단히 묶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용법으로 메시야의 단호한 침묵의 의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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