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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토요일 파스카 성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1 조회수1,607 추천수2 반대(0) 신고

 

드디어 오늘 저녁에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뵐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되살아나신 정도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최고의 절정인 순간이 될 것입니다. 바로 영광의 시간입니다. 세상이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 하는 그런 처절한 싸움에서 죽음을 가져온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때는 바로 토요일 안식일 어스름밤을 지날 무렵입니다. 유대인의 시간으로는 그렇습니다. 해는 동이 트려고 준비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어둠이 사라지면서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그 서막을 알리는 신호가 바로 지진입니다.

 

성경에서 지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226절에 그분의 소리가 땅을 흔들었지만이라고 나옵니다. 첫 신호탄으로 알려주시면서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군요. 마리아 막달레나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신 무덤으로 예수님을 뵈러 갔을 때입니다. 이때 천사와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같은 천사인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무덤을 지키고 경비한 자들은 놀라 까무러칩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지키고 있었는지는 다 아실 겁니다.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죠. 예수님께서 생전에 워낙 많이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말씀의 진위 여부를 떠나 나중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 시점에 예수님의 몸을 거두어서 없게 한 상태를 만들어 부활하셨다고 주장할까 봐 그런 일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획된 하느님의 일은 인간이 아무리 그런 술책을 사용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모습이 오늘 복음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을 때 긴장된 심정으로 지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뭔가 잘못되면 자신들의 안위에도 문제가 될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여인들이 천사를 만나기 전에 천사들은 동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돌을 치우게 됩니다. 치우니 동굴 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부활하셔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없게 되신 것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좀 특이한 것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돌을 치웠으며 그냥 천사가 나타나게 하시지 않아도 되었을 건데 하고 말입니다.

 

일단 여기서 먼저 천사들은 돌을 옆으로 굴린 후에 그 돌 위에 앉습니다. 이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승리를 상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딱 보면 그럴 것 같습니다. 또한 옷은 눈처럼 희었다고 나옵니다. 이건 거룩하게 부활하신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런 신앙을 믿고 따라 간다면 우리의 모습이 다시 나중에 부활할 때 부활하기 전의 모습으로 부활한다면 끔찍할 것입니다. 아마도요.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이 모습은 바로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상징할 겁니다. 천사들이 돌을 치우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재를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면도 있습니다. 그래야 정확하게 부활하셨다고 할 수가 있을 테니깐요.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사람은 정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잘 믿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우회적으로 성경은 표현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돌이 옆으로 위치가 옮겨진 것도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돌은 당시 장례 풍습 때문에 있었던 것이지만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까 말입니다. 이미 이 돌이 옮겨지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그 공간에 안 계신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돌이 가려져 있던 무덤 앞에서 제거가 된 것입니다. 그 돌이 치워지면서 실제 부활하신 것이 증명이 된 셈입니다.

 

이 돌은 돌의 위치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그 돌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신앙을 믿지 못하는 장애물 덩어리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속에 굳게 닫혀 있는 불신의 덩어리입니다. 천사가 그 위에 있었다는 게 바로 그 불신의 덩어리를 제압한 모습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승리를 상징한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해주라고 말입니다. 여인들도 실제 예수님께서 안 계신 모습을 보고서 너무나도 놀랐을 겁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평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신반의했을지도 모릅니다.

 

평소에 하신 기적을 보면서 그런 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기적만 보고 그런 사실을 믿었다고 가정한다면 유다도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기적을 봤을 텐데도 예수님을 배신한 걸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언급돼서 잠시 언급하려고 합니다. 정진석 전 추기경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을 팔아 넘기게 되면 그때 자기가 평소 봐왔던 기적처럼 뭔가 엄청난 기적을 행해서 자신이 꿈꾸어왔던 그런 메시야 상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조치를 해 주실 거라는 상상을 했을 수도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 넘긴 면도 있지 않았을까 하셨습니다.

 

아무튼 이 여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들의 심정은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만 두렵기도 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려고 가는 여인들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러시면서 평안하냐?”고 인사를 하시는데 여인들은 그만 예수님께 다가가 엎드려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하게 됩니다.

 

저는 처음엔 이 여인들이 예수님을 붙잡은 게 뭔가를 확인하려고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바로 이게 희망과 존경을 나타내주는 의미라고 성경주석에 나옵니다. 평안하냐의 의미가 만세를 상징한다고 성경주석에 나옵니다. 그럼 이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세는 승리나 기쁨이 있을 때 하는 동작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표현도 되지 않을까요? “봐라! 내가 그토록 말하지 않았느냐? ‘죽으면 부활한다.”고 말이다. 마치 이런 의미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모습과도 같은 것이니깐요.

 

오늘 바오로 서간에도 나옵니다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그분에게 죽음이 군림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완전히 죽음을 이기신 분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면서 재미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제 늦게 돌아와서 샤워 후에 드라이기를 사용했습니다. 머리를 말리다가 매트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제가 그걸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려고 하다가 잘 안 돼서 아예 기기 입구를 무식하게 마치 다리미 사용하듯이 하면 빨리 열 기운 때문에 마를 거라고 생각해 그만 그렇게 했는데 조금 있다가 모타 타는 냄새가 난 후에 드라이기가 동작을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바람 나가는 입구가 막혀 열기 때문에 모타가 탄 줄 알았습니다. 몇 번이고 스위치를 켜봤지만 안 됐습니다. 순간 고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도 이뿌장하고 해서 좋아한 모델인데 순간 실수로 고장이 나서 버리려고 하니 아쉬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글을 쓰기 전에 혹시나 한번 다시 동작을 시켜봤습니다. 근데 동작이 되는 것입니다. 순간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만약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걸 보면서 재미난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돌아온 탕자에 나오는 아버지의 말입니다. 탕자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고 한 말씀입니다.

 

주님 부활 성야와 부활 축일에 맞추어 이런 일이 일어나니 너무나도 재미가 있습니다. 자기 전에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망가졌다고 생각한 게 다시 동작이 되니 보잘것없는 기계도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보고 기쁜데 하물며 사람의 영혼은 성경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 영혼이 다시 태어나면 그냥 어느 정도 살다가 다시 죽는 게 아니고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삶을 누리려고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준비는 우리의 영혼을 위한 투자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투자라고 하니 좀 어감이 약간 이상한 듯하지만 이 투자는 이 세상에 그 어떤 투자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투자의 가치를 알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사는 동안 영생의 꿈을 안고 어떤 역경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잘 인내할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현세의 복에 더 마음을 쏟을 것입니다.

 

멀리 보면 짧은 현세에 마음을 쏟는 사람은 나중에 영원의 세계에 가서는 복음에도 나오는 표현처럼 이를 갈고 울며 후회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때 좀 더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미 그땐 지나간 버스 보고 손 흔드는 격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아서 심기일전해 부활을 잘 마무리해서 새로 태어나 지난 과거를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하는 심정으로 하느님께 달려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미리 부활 축하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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