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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10,34ㄱ.37ㄴ-4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2 조회수1,476 추천수0 반대(0) 신고

 

주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사도10,34ㄱ.37ㄴ-43)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39-40)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 백인 대장 코르넬리우스 집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는 내용이다여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갈라디아 3장 1절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신명기 21장 23절을 인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9절의 '나무에 매달아'에 해당하는 '크레마산테스 에피 크쉴루'(kremasantes epi chsylu;hanged on a tree)도 신명기 21장 23절의 문장 형태와 유사하다.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된다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명21,22-23)

 

베드로는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나무에 매달리심을 신명기 21장 23절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신명기에 따르면사람이 범죄하여 처형당할 경우에 그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경계의 표본으로 삼았는데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것은 그가 저주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면서 '십자가'라는 표현이 아닌 '나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저주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가 받은 저주는 장차 인간들이 당할 모든 저주에서 인간들을 건지는 대속적 저주였다.

베드로는 '나무'라는 단어를 통해 바로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장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에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십자)나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한편 '매달아'로 번역된 '크레마산테스'(kremasantes)는 '걸다', '~에 달려있다'를 의미하는 '크레만뉘미'(kremannymi)의 부정(不定과거 분사로서 '매단후에라는 뜻이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매단 이후에 죽였다는 사실이 이 부정 과거 분사형 단어에 나타나 있다.

 

유대인들은 범죄자를 처형할 때 돌로 쳐서 죽였다때로 그들은 형을 집행하여 이미 죽은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수치스러움과 저주 받았음을 나타내고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범죄자를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아 형을 집행하였으며본문의 시제는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로마인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고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0)

 

사도행전 10장 40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원문의 뉘앙스를 가지고 번역하면, '하느님께서는 일으키셨다그리고 그분은 공공연히 보이도록 그를 내주셨다가 된다.

 

'일으키시어'에 해당하는 '에게이렌'(egeiren; raised up)은 '에게이로'(egeiro)의 부정(不定과거 3인칭 단수이다.

고전 희랍어에서 '에게이로'(egeiro)는 세가지 기본 개념으로 쓰였다첫째는 '깨우다', '자극시키다'이고둘째는 '일으켜 세우다', 셋째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라는 의미이다본절에서는 세번째의 개념인 '죽은 자를 다시 살리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편 '나타나게 하셨습니다로 번역된 '에도켄 아우톤 엠파네 게네스타이' (edoken auton emphane genesthai; caused him to be seen)에서 '엠파네'(emphane)는 '명백한', '보이는'을 뜻하는 형용사 '엠파네스' (emphanes)의 목적격이다.

이 단어는 '나타내다', '전시하다를 의미하는 '엠파니조'(emphanizo)와 관련되며 신약에 단 두번 나타난다본절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는 뜻이다(로마10,20참조).

 

베드로 사도가 이러한 단어를 사용해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를 공공연히 나타나게 하셨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르넬리우스 집안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들이 이방인들이고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다는 유대인들이 퍼뜨린 헛소문(마태28,13)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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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알렐루야~

주님 부활을 교형자매님들 축하드립니다.  부활의 삶을 삽시다. 알렐루야~~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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