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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4 조회수1,70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제1독서 사도 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복음 요한 20,11-18

그때에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초등학교 때, 집이 이사 가서

 다니던 학교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은 너무나

어색했고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보셨는지,

담임선생님께서는 늘 관심을

써주셨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덕에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많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다

른 학교로 전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하는 날, 펑펑 울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만날 수 없는데도,

 헤어짐 그 자체가 너무나

슬펐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명연이는 산수와 과학을 잘하니까

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 거야.”
이 말씀을 들은 뒤, 제게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은 산수와 과학이

되었습니다. 좋아하던 선생님이

 인정해주신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처럼 과학자가 아니라

이렇게 신부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 뒤로 선생님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얼굴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길에서 마주쳐도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선생님의 목소리입니다.

제게 힘을 주셨던 목소리,

따뜻한 손길이 중년에 들어선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이 무덤 안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다시 한번 무덤 안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사랑하기에

 무덤까지 찾아간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의심하는

마음으로는 에수님의 부활을 알아보는

눈이 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양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마리아는 비록 의심의

마음 때문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라뿌니(스승님)”라고 외치게 됩니다.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지금 “짠~~”하고 직접

나타나셔도 우리는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죄로 얼룩지어져 있고,

일상 안에서 많은 의심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마리아처럼 “라뿌니”라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살아 있다는 건 매일

유쾌하고 새로워지는 일,

또 자신을 발견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헨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심장마비 걸릴 일

실제로 일어난 황당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글쎄 장례식 도중에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가 관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기뻐해야 할

상황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어머니의 딸이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 어머니는 다시 살아나서 기뻤을까요?

아니면 자신으로 인해 딸이

죽었다고 괴로워했을까요?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도 깜짝 놀라

심장마비에 걸릴 일이 아니었을까요?

더군다나 제자들은 주님을 모른다고

부정했고, 자기도 죽을지 몰라

무서워 다락방에 숨어 있지 않았습니까?

 주님께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심장마비 걸리지 않도록

배려하십니다. 조금씩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배려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나의 이웃에게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만 받는 배려가 아니라,

내가 베푸는 배려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마리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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