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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복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5 조회수1,651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입니다. 가장 핵심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굴에 묻어나 있습니다.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랐지만 제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배우긴 배웠는데 진정한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한 구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21절에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그들은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염불을 가르쳐주셨는데 그들은 이상한 잿밥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고 그런 메시야가 이 세상에서 등극하시는 날에 그들도 예수님의 그 영광을 함께 나누며 자기들에게도 뭔가 콩고물이 떨어질 걸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그만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닌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 같아 침통했지 않았을까요? 걸어가면서 후회를 하며 서로 신세한탄이나 했을 겁니다.

 

이런 제자를 보니 예수님께서는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처롭기도 할 겁니다. 3년이나 가르쳤더만 기껏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말입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슬쩍 그들 옆으로 다가가시어 같이 걷고 계십니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마 눈이 가리어진 것은 너무나 침통한 마음에 그들의 정신이 매몰돼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이때 예수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일을 상세하게 말을 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속에 약간의 한탄의 의미를 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인데 예수님의 사건을 모르느냐 하면서 의아해합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이 예언자였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자기들이 기대한 메시야인 줄 알았는데 형편없이 십자가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뒷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의 부활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그 말을 하는 순간에 예수님께서 한말씀하십니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십니다. 이 제자들이 왜 믿음에 굼떴을까요? 잿밥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그들의 귀에는 귓등을 스쳐지나간 것입니다. 가슴을 치고 갔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은 모세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어느덧 설명을 하시다가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날도 저물고 한데 예수님께서 더 가시려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동행을 하면서 좋은 이야기 감사하게 잘 들었다고 그러면서 헤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은 예수님께 그만 날도 저물고 하니 자기 집에 묵고 가시는 게 어떠시느냐고 청합니다.

 

복음에는 안 나오지만 예수님의 뭔가 불가사의한 힘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정했을 겁니다. 루카복음사가가 단순히 복음을 적을 때 이런 의도로 하지 않았다면 오늘 복음은 의미가 별 없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목적지에 다 와서 그냥 헤어지게 되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집에서 빵을 들고 찬미를 하신 다음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십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신 그걸 재현하신 것이라고 보기엔 힘들고 단순히 앞으로 초기교회들이 예수님 사후에 성찬례를 거행하게 될 터인데 그때 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시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주석의 내용을 제가 좀 더 쉽게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주석의 의미가 좀 딱딱한 것 같아서요. 주석의 의미가 확실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빵을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신비롭게도 말씀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그만 사라지졌습니다. 왜 한 말씀도 안 하시고 사라지셨을까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아마도 빵을 나눈 후에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그 여운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시간 속에서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볼 수 있고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하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하는 말입니다. 이들이 낮에 있었던 그 느낌을 이 말에서도 알 수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빵을 나누고 난 후에 이런 말이 복음에 언급됐습니다. 이 상황은 빵을 나누기 이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 빵을 나누는 게 성찬의 예형이면 이때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전해주신 게 전례로 말하면 말씀의 전례가 되는 예표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제가 전례를 전공한 어떤 신부님의 기고문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하신 것 같습니다.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 때 우리의 마음을 군불로 지져 뜨겁게 달구워서 성찬의 전례에서 절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신 그런 내용입니다. 마치 그 표현이 오늘 복음이 말씀하시는 맥락과 아주 흡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오늘 복음의 전체 스토리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실 겁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디서 만나뵈어야 하는가?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기도 속에서도 만날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가난한 사람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말씀과 성찬으로 축약이 된 것으로 보면 바로 그게 미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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