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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6 조회수1,48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내용에 대한 제자들의 이야기로 복음은 시작합니다. 어제 복음에 이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길을 가면서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실 때와 날이 저물어 제자들과 함께 저녁에 그들 집에서 빵을 나눌 때 그때 예수님을 알아본 이야기를 할 때 또 한 번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을 하십니다.

 

이때에도 제자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유령처럼 생각을 합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지금도 낮에 있었던 일이든지 빵을 뗄 때 있었던 그 일을 보면서 뭔가 자기들 마음에 불 같은 게 타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하게 느낄 수 없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부활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제 그 당시 2000년 전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수도원에서 디다꼬라는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 당시의 사람들의 수준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오늘날 수준과 비교하면 엄청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꼭 그래서만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을 하신 건 아니지만 비유로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고 말씀하신 걸 기억합니다.

 

그렇다보니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들에게 당신의 몸을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유령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시려는 의도이십니다. 그러시면서 갑자기 먹을 것을 찾으시면서 잡수시고 난 후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저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강조하시면서 물론 시장하셔서 드실 것을 찾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복음의 내용이 연결되는 문맥의 흐름으로 봐서는 조금 어색한 면이 있어 이해가 좀 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뭔가 설명이 있는지 주석을 찾아봤습니다.

 

약간의 보조 설명이 있긴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런 부분을 언급하면서 육적인 부활이 확실하다는 의도를 보여주기 위한 면도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의도였다면 좀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내용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의 최종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제 승천을 앞두고 계십니다. 이 세상을 떠나시는 걸 앞두고 하신 말씀이라 일종의 유언처럼 당부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십니다. 바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모든 민족들에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복음화입니다. 복음화를 언급하시면서 성경을 깨닫게 하신 걸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복음화의 도구가 바로 성경임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베드로 사도는 강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지는 바로 우리의 죄성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죄를 지우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동안에 예수님 당신께서는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시 생기를 찾으실 때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독서의 의미를 묵상하면 그냥 시간이 지나면 생기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생기가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것은 종말을 상징할 겁니다. 독서에서도 언급됐지만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원된다는 것은 원래의 죄가 없는 세상으로 회복을 말할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게 예수님께서 외치신 것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가 찼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사마리아 땅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가 상징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곳을 상징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 모든 곳에 복음이 선포되시길 원하시는 간절한 바람이 녹아 있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복음화가 어떤 게 있을지 묵상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선교도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저는 현실적인 직업의 특성상 우리가 말하는 그런 선교는 하지 못합니다. 근데 저는 그래서 고민을 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간접적으로 명시적으로는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제 일을 하면서는 할 수가 없지만 저는 애들을 지도하면서 애둘러서 말을 합니다. 학생들에게 유익을 줄 때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내가 이렇게 나름 양심적으로 또 선량하게 뭔가 너희들에게 할 수가 있는 원인은 난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나중에 우린 죽으면 심판을 받게 된다. 세상적으로는 죄가 되지 않아도 하느님의 정의라는 관점에서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죄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그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표현을 하긴 합니다.

 

그러면 애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자기들의 의식 속에는 보이지 않게 무의식 속에 종교를 가지고 하느님을 믿으면 나름 양심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가지게 할 수가 있고 언젠가 이 애들이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제가 하는 이 방식이 마치 스피노자가 한 말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처럼 이 일이 하나의 작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의 방법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씨를 뿌리고 성장시키고 거두는 것은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는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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