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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6 조회수1,478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베드로 사도를 필두로 해 배를 타고 호숫가에 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습니다. 밤이 어느덧 아침녘이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물가에 계셨는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실제 원문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약 50미터 남짓되는 거리인 것 같습니다. 신약성서 주석서에 나오는 것을 참조해보니 그렇습니다. 이 정도 거리이면 어느 정도는 시야가 확보가 될 것인데 알아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잘 가늠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묵상은 답이 없다는 원칙에 따라 나름 상상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못 잡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물을 오른쪽으로 내려서 잡으면 고기가 잡힐 것이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더니만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잡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 사도입니다.

 

처음엔 요한 사도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본 것일까를 고민했는데 시야 때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추측을 해봤습니다. 요한 사도가 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보고 그때 예수님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혹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걸 보고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주석서를 보니 공교롭게도 추측한 사실이 맞았습니다.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은 베드로 사도에게 알렸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요한 사도였지만 그런 사실에 몸으로 반응을 한 것은 바로 성격 급한 베드로였습니다. 바로 호수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요한 사도가 왜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애제자가 되었는지 묵상해봤습니다. 여성과 같은 영적인 감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예민함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감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적인 감수성은 잘은 모르지만 복음에서 말하는 깨어있음을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깨어있으려면 항상 무언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는 정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진리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것일 겁니다.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일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그런 은사를 주실 것 같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내용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런 빛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마 제자들 중에 저는 가장 으뜸이 요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예수님께서 잡수실 고기를 좀 가져오라고 하셨을 때 그물에서 가져온 고기를 보고 나서야 그토록 많은 고기를 잡았음에도 그물이 찟어지지 않은 걸 보고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나옵니다. 이들도 나중에는 주님임을 알았지만 여기서 저는 주목하고 싶은 게 예수님을 알아본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먼저 알아봤느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라톤이라는 경기를 보시더라도 물론 완주도 중요하지만 누가 먼저 결승선에 들어오느냐도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예수님을 먼저 알아본 요한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어쩌면 요한이 먼저 알아본 것은 기적도 기적이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한 제자였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그런 절절한 마음이 있기에 그 마음만큼이나 예수님을 먼저 볼 수가 있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런 생각도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나 영안이 어두워 남들이 보는 예수님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지 못한다면 물론 영적인 눈으로 말입니다만 참으로 그 영혼은 불쌍한 영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그런 영혼이 되지 않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그런 영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다리를 걸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과 예수님을 두고 말입니다. 결국 마음이 온전히 예수님께 올인한 영혼만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배 오른쪽에 잡힌 물고기와 같지 않을까요?

 

그물이 상징하는 게 교회라고 합니다. 그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게 바로 우리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오른쪽이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하느님 우편으로 의인들이 가는 곳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오른쪽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니 고기가 많이 잡히는 그런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게 어쩌면 순종의 축복을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순종하면 그 열매는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요한 사도처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빨리 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 묵상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묵상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볼 수 없는 그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과 맞먹는 고통이라는 어느 성인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가슴과 마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떤 길이 있을까를 생각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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