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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_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작성자한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7 조회수1,39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04.17.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요한 21,6)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에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항상 풍요가 넘쳐납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하나도 해내지 못했던 것들이 그분의 길을 걸을 때면 차고 넘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 같은 만남과 체험은 우리 일상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그런 기적들에게 대해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기 전에 그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연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녀가 어려움 중에 있는데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겠습니까? 우리도 이럴진대 하느님은 얼마나 더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침묵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저는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느낍니다. ‘인간은 참으로 부족한 존재이구나. 교만하기 이를 데 없고 간사기 짝이 없구나.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그것이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 나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너무나도 자주 그것을 잃고 때로는 하느님의 반대되는 일을 원하기도 하는구나.’

이는 바오로 사도께서 로마서에서 말씀하신 바와도 비슷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로마 7,19)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저하시는 이유는 지금의 이 순간만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반 안에서의 오늘의 사건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만 해결되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해결이 더 큰 영혼의 상처를 가지고 올 수 있음을 보고 계시기 때문에 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는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해가 지기 전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물들을 제대로 준비하고 물고기가 많은 자리를 찾아가 그물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부였기에 이런 지식들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밤새 그들은 무엇 하나 건져 올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아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시도’가 모두 끝날 무렵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저는 이 모습을 인간적인 힘이 빠져가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렇게나 힘든 와중에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기 쉽습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언제나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기적들은 때론 믿음을 강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의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닙니다. 작은 어려움에서는 벗어났지만 결국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만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리에 내가 놓이는 것만큼 교만하기 짝이 없고 비참하며 슬픔 가득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적 앞에는 큰 믿음을 요구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하느님이 그 앞에 계신지를 묻곤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은 또 한 번 힘들게 얻은 아들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큰 고통 중에도 ‘하느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믿음’은 그를 믿는 이들의 아버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이 우리를 위해 당신 외 아드님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모습과도 참 닮았으며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큰 산을 지나는데 있어 가장 빠른 길은 터널을 지나는 길입니다. 지금 지나는 인생길이 마치 터널과 같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장 짧은 지름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더 순도가 높은 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온도와 더 많은 담금질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길이 순탄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지금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담금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시련과 고통 중에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하실 것이며 때가 이르면 형언할 수 없는 은총과 축복으로 당신을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2,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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