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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19 조회수2,06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4월 19일

 

부활 제2주일

 

제1독서 사도 2,42-47

 

형제들은 42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제2독서 1베드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어느 지역에 지혜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고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이 현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대뜸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현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대답이 너무 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답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상식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세 살 난 어린애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현자는 말합니다.
“그렇소.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알고 있지만, 팔십 노인일지라도

 

행하기는 어렵지요.”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고

 

늘 머뭇거리기만 하는 우리를 향한

 

말인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하지요.

 

어떻게 사랑하는 줄을 몰라서 그럴까요?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않고

 

머뭇거리고만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주님께서 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용기를 갖고 세상 끝까지

 

가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러나 두려움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방 안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는 당신 자신을 의미하지요.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영혼은

 

언제나 평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며 다가오십니다.

 

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령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용서의 삶을

 

그리고 참 평화의 삶을 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우리입니다.

 

 즉, 몰라서 죄를 많이 짓는

 

부족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가끔씩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면 인생을 놓쳐버리고 만다.

 

(페르스 빌러)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겨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입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서야 저의 잘못된

 

모습을 깊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께도 그랬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주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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