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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1 조회수2,17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4월 21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복음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한 청년이 배가 너무 고파서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가난한 청년이었기에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간신히 햄버거 하나를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햄버거가 나왔고,

 

이 청년은 야외 벤치 그늘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햄버거 가게 앞에 멈췄습니다.

 

차에서는 비서인 듯한 여자가

 

나오더니 햄버거 가게 안으로

 

 들어가 햄버거 세트를 구매한 뒤에,

 

 차 안으로 이 세트를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던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누가 사다 주는

 

햄버거를 저렇게 멋진 승용차

 

안에서 편히 앉아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도 벤치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햄버거를 사 먹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상대방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세상일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만을 바라보면서

 

감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힘든

 

 세상일이라며 불평불만을 갖는

 

 우리입니다. 이렇게 세상일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에서 태어나서

 

하늘 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일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하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이해력의 부족만이 아니라

 

믿음의 부족도 탓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며, 따라서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의 길을 열어주신다는 믿음,

 

그래서 진심으로 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 오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주님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당신 삶을 변화시켜 줄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가?

 

거울을 보라.

 

(작자 미상)

 

자판기 신앙, 날강도 신앙

 

언젠가 어느 분이 거리에 있는

 

자판기를 두드리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자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환불을 받든지 아니면

 

어떤 조치를 받겠지만 누가

 

관리하는지를 알 수 없는 거리에

 

세워져 있는 자판기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겠지요.

 

 결국 이분은 화만 내다가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판기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자신의 책에서

 

‘자판기식 신앙’과 결별해야

 

한다는 글을 쓰셨습니다. 즉,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원하는

 

물건을 취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원하는 바를 청해서

 

들어주시길 요구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못한 신앙은

 

아닐까요? 거리의 자판기에는

 

돈이라도 넣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요구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판기에

 

 돈도 넣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쏟아내라고 화를 내는 것만 같습니다.

 

기도나 봉사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실천도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께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합니다.
자판기 신앙을 뛰어넘어

 

‘날강도 신앙’은 아닐까요?

 

(높이 올려진 느보산의 구리뱀.

 

주님도 높이 들어 올려져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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