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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과연 나의 믿음은 순도 몇 %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1 조회수1,326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계속 이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니코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복음 9절에 니코데모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성경 말씀이든지 신부님의 말씀이든지 말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그걸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설마 그럴까?” 라는 형식으로 반신반의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니코데모만 그런 게 아니고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니코데모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최근에 피아골 피정의 집에서 사목하시는 김연준 신부님의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하신 강론입니다. 사순 때입니다. 영적으로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면 차고 뜨거우면 뜨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도 그럴 겁니다. 믿을라면 확실히 믿어야지 양다리 걸치면 물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하나를 주목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면 나중에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앞에서 모른다고 하신 말씀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양다리 걸치기 식의 믿음을 가졌다고 한번 가정해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 각자 변호를 해주실 텐데 그때 지상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가졌던 믿음 그대로 우리를 위해 변호를 해 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절대적으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견지했더라면 똑같이 예수님도 저희 영혼을 위해서 하느님께 변호를 해 주실 거지만 반신반의한 믿음을 가졌다면 예수님께서도 저희를 보시고 확신에 차서 하느님께 변호를 해 주시겠습니까?

 

만약 그런 상황에 저희가 놓인다면 그때 마음이 정말 초조할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어떻게 변호를 해 주실지 말입니다. 그때 땅을 치고 후회를 할 겁니다. 왜 지상에서 살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가지지 못하고 세상과 적절하게 타협하며 세상이 주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은 대로 누릴 만큼 실컷 누리고 예수님께는 얼마 남지 않은 마음을 바치면서 그래도 마음속으로 요즘 세상에 이렇게라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이게 어디입니까?”하는 식의 마음으로 자신을 애써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이 모르긴 몰라도 저에게도 있을 겁니다. 참으로 가증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마치 예수님께 어쩌면 찌꺼기 같은 믿음을 바치면서 생색내는 그런 모습이니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역겨우실지 모를 일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느님께 바친 마음 그대로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되돌려 받을 겁니다. 5년 전에 제가 교구청에서 낮에 성경강의를 성경부 소속 수녀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강의하시는 날이었습니다. 딱 세 개의 내용이 기억납니다. 하나는 너무 우낀 내용으로 수녀님이 말씀하셨는데 오늘 복음과는 관련이 없어서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집가는 이야기인데 너무 우낀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수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이 너무 초라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요. 그래서 천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자기 집은 이렇게 초라한지 말입니다. 그러니 천사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지상에서 바친 재료로 지었기 때문에 그런 집밖에 지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날 수녀님의 그 말씀을 듣고 정말 하루종일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재물적인 것에 비유의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지만 꼭 그런 것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살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모든 정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잠시 지나가는 세상에 목을 맬 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곳에 마음을 쏟아 붓는 게 현명할 겁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런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에 그런 인간의 나약한 한계를 뛰어넘어서 자신의 믿음을 하느님께 바치는 그 영혼을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그에 맞는 축복을 해 주실 겁니다. 우리는 그런 축복을 희망해서라기보다는 그런 희망이라도 가져야 하느님께 항구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정도는 하느님께서 이해를 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는 육을 입고 있는 몸이라 그보다 더 높은 믿음을 바라시는 것은 아마도 하느님께서도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하실 거라고 봅니다.

 

오늘 묵상의 초점은 이런 것입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순도가 몇%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참 부끄럽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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