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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2 조회수1,484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게 목적입니다. 다만 이런 목적에 따라주지 않는자에게는 심판이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구원이라는 의미보다는 심판에 초점을 맞추어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구원은 어쩌면 단순합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충실하게 살면 사실 심판 같은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만도 합니다.

 

또한 구원으로 가는 길에서 이탈이 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심판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심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심판을 하시는 주체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또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심판하시리라는 사정도 25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과연 심판은 하느님이 심판하실까?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철저히 성경과 교부들의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나름 묵상을 하며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먼저 결론을 내린 후에 그것을 논증하는 방식으로 심판의 의미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심판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교리서 679항 끝부분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 이게 무슨 궤변인가 하실 것 같아 교리 항목을 언급해드렸습니다. 인터넷에서 교리 679항을 한번 검색해서 찾아보셔도 됩니다. 좀 더 설명을 추가를 한다면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나옵니다. 저는 일단 교리에서 명시한 부분을 가지고 나름 논리적으로 묵상을 한번 해봤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게 목적이지만 하느님께서도 그런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근데 그 심판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속에도 하느님의 영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선한 영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속에도 하느님의 영이 있습니다.

 

단지 그 하느님의 영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 자아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 자아를 벗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원래 우리가 창조된 원죄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구원의 의미입니다. 어제 낮부터 엄청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나름 최종 정리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복음사가는 심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그건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빛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20절에 보면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예수님)을 미워하고 빛(예수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다음 구절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성경 주석을 바탕으로 하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악을 저지르는 자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과 단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시의 의미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임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계시자로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들이고 그 권능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이런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심판의 의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바로 심판을 받게 될 사람은 그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어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악한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빛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이 자신의 어두운 면을 비추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이 빛이 두려움의 빛이 아니라 영광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21절에 나옵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심판은 사람이 자초한다는 것이라는 가톨릭 교리 679항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내용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심판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 사람의 경우에는 빛(예수님)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게 오늘 복음이 말하는 심판일 겁니다.

 

그렇다면 심판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신 것을 보셨는지요? 하느님께서는 다만 하느님의 속성인 빛 그 자체로만 이 세상에 오신 것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빛을 보고 숨느냐 아니면 그 빛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빛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가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악한 행실이 우리 속에 있는 하느님의 영을 가로막고 있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어둠 속에 있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어둠은 그렇다면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자기가 악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어둠을 몰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누굴 탓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어둠을 선택한 것도 자신의 악한 행위로 빚어진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둠 속에 갇히게 되는 그런 일도 자기가 자초한 일이 되는 것이라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어둠의 장막이 너무나도 짙어서 영원히 하느님의 빛을 보지 못하고 갇혀 있게 되어 하느님과 단절이 된 상태로 존재한다면 이게 가톨릭에서 말하는 지옥의 개념일 겁니다. 결국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하는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습니다.

 

만약 그냥 단순히 그 책임을 하느님께 돌린다면 하느님을 무자비한 하느님으로 만드는 형국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마치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 형벌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는 없다고 선언하는 내용과 아주 흡사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미결수라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세상법에 미결수라는 게 있습니다. 형이 확정이 되지 않은 사람인 형사 피의자나 피고인이 구금되어 있는 상태의 사람을 미결수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가 꼭 미결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바로 이 세상이 저는 구금이 된 상태에 있는 거랑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모찬송에도 나옵니다. 귀양살이 끝날 때라고 말입니다. 귀양살이라는 게 바로 유배되어 있는 신분입니다. 바로 구금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신분인 미결수와 같지 않을까요?


기결수가 되면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것이고 기결수가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갈 것입니다. 또한 어쩌면 이 세상이 또 다른 연옥일 수가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인들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짊어질 십자가를 잘 지고 간 사람은 그 십자가가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가게 해 준다고 어떤 성인이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성인이 한 말씀인데 어떤 성인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이 내용을 인용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묵상한 복음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누구나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양심인 선한 영인 하느님의 영이 죄악이라는 어둠을 뚫고 나오려고 사생결단을 하며 끊임없이 싸워서 그 장막을 탈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빛을 볼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영 하느님과의 단절된 상태로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옥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리도 이와 같은 맥락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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