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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2 조회수2,12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4월 22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복음 요한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1890년,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한 노인에게 이웃에 사는 화가가

 손수레 가득 수백 점의 그림을

 싣고 찾아왔습니다. 이 화가는

 노인에게 돈을 빌렸는데 도저히

 갚지 못할 것 같다면서 자신의

 그림을 수레에 담아 와서 빌린 돈 대신

 그림을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 그림이야 내게

 짐만 될 거야. 도저히 받을 수 없네.”

 라면서 거절했습니다.

 이 노인의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수레라도 받아 놓지 그랬어요?”
이 화가의 이름은 여러분도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지금 그의 작품 가격은

 어마어마합니다. 1990년에

 그의 작품 ‘가세 박사의 초상’이

 8,250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980억) 

에 팔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노인은 이 작품의

 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히

 쓸모없는 짐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때 그 그림을 받아들였다면

 후손대대 큰 부를

 누리면서 살게 되었겠지요.
지금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판단이 나중에 큰 후회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따르는데 갈등이

 참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의 것들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돈도 생기지 않고,

 명예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어떠할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혹시 하지 않았던 일들이

 후회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은 하느님 사랑의

 지극함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께서 세상에 주신

 대단히 귀한 선물입니다.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심으로써

 아버지께서는 생명 자체,

 곧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제일 유익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 오심은 심판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대신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따르려고 하면서 주님께서

 원하는 행실을 따르지 못합니다.

 빛을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 세상 안에서는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과 정반대로

 나아가면서 빛이 아닌 어둠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선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후회를 만들어가는 삶이 아닌,

 참 기쁨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불안에 먹이를 주지 마라.

 과대망상에 먹이를 주지 마라.

 이 둘 모두 고요를 가로막는 방해물이다.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라이언 홀리데이)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어느 카페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먹이 왔다 갔다 하는

 폭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견의 불일치로

 심각한 말싸움을 하더군요.

 그런데 의견의 일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지,

 남자는 화를 내면서 일어나 나갔고

  여자는 자신의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계속해서

 울고 있었습니다.
사실 카페에서의 싸움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영국 레딩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연인이 어느

 장소에서 싸우느냐에 따라 이별할

 확률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나쁜 곳은 소음이

 가득한 곳이라고 합니다.

 소음으로 상대의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노랫소리와 사람들

 말소리로 가득한 카페가

 좋은 공간은 절대 되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말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세상의

 소음 속에서 주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침묵 안에서 잘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사랑의 주님을

 이해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바뀝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제대로 따라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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