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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수요일 _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3,19)
작성자한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2 조회수1,46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04.22.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3,19)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당신을 알게 됨으로 얻은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제가 좋아하는 성가의 한 구절입니다. 이 시대 안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정말 아주 자주 ‘그분을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갖곤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정해주신 규율들은 모두 우리가 더 큰 행복과 사랑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렇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현대 신학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자비 자체이신 나머지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죽음 이후에는 그분의 나라로 ‘초대’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분의 자비는 저에게 ‘죄로 향하는 경향성’을 더 짙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차피 성사 보면 되는 걸.’

‘이왕 성사를 봐야하는 것이라면 좀 더 죄 짓다가 보는 게 마음도 더 편하지 않을까?’

‘진짜 한 번이 어려운 거구나. 반복되면 이렇게 마음도 편한 것을’

‘죄는 누가 규정한 걸까? 나는 이렇게나 하고 싶은데 정말 이것이 죄는 맞는 건가?’

 

어차피 용서받을 몸.

내가 그분의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하늘나라.

그래서 저는 우리 신앙의 목적지인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이 너무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어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생각을 뒤흔드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지인 신부님과 대화 중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저는 “정말 그것이 맞다면 한평생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사는 게 낫겠어요. 죽기 전에 대세 받고 성사 받고 하면 어차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하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런 제게 그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안토니오. 혹시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니? 그런 경험이 있다면 아마 그 때 ‘이 사람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을 거야. 안토니오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법을 알게 되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다면 지금의 생각이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고.”

 

또 한 번은 30일 피정 중에 있던 일입니다.

고대하던 이냐시오 영신수련 30일 피정을 하는 가운데 저는 더욱 더 하느님 뜻에 맞갖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저의 마음을 만났습니다.

‘나는 결코 그분을 따르지 않으리라. 내 안의 수많은 상처들을 보아라. 그 때 그분은 어디에 계셨으며 내게 무엇을 하셨는가. 왜 그분은 나를 힘들게만 하는가.’

솔직히 그 며칠 동안은 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도 지금 당장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분의 초대에 응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저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함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뜻을 실행하기보다는 죄의 유혹들이 더 달콤하기에 자주 그 탐스런 열매로 고개를 돌리는 저를 만나게 되었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와 친해지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몇 날 며칠을 함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그냥 다녔던’ 것처럼 성당은 ‘그냥 다니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빛이신 그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기쁨으로 맞이했는지 아니면 제가 가진 것을 내어 놓으라 하실까 두려워 뒤돌아서 내 소유물들을 가리기에 급급했는지 생각해 봅니다.

 

빛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참으로 잘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슬프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조차 잘 모르겠고 솔직히 때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어쩌면 저는 ‘저의 죄’를 ‘저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분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하루이길 기도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한다면, 이는 율법이 좋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입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로마 7,15-2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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