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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의 꿈[2]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8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2 조회수1,774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요셉의 꿈

 

요셉은 그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러나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이는 요셉이 형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지고 보면 이유야 간단할 게다. 그것은 그가 어미가 없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아들들보다 달리 혼자서 독차지했기에.

 

이제부터 요셉의 꿈 이야기다. 그의 꿈 이야기는 대부분 두 개씩 짝지어 있다. 쌍으로 제시되는 이러한 현상은 요셉의 모든 꿈 이야기에 관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교부들과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그의 이야기에서 서로 구별되는 두 편집 단계를 주시해 왔는데, 연이어 소개되는 두 가지 꿈 이야기가 단순히 반복되는 이야기라고 보기가 때로는 아주 어렵단다. 그것은 편집과정에서 다소 뒤틀리기에 별개의 내용을 일부러 짜 맞춘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는 거다.

 

사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묵상하기에 앞서, 성경에서 꿈이라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또 다른 요셉의 꿈 이야기일 것이다. 우선 여기에서 묵상하고자 하는 꿈에 관한 것이 창세기 요셉의 것이라면, 뒤에서 말하는 꿈의 이야기는 신약의 요셉의 것이다. 신약의 첫 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문을 연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1)이다. 이 족보의 끝부분은 이렇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란다. 구약의 표현대로라면 요셉의 아내 마리아‘가 될 법한데, 신약이기에 한 마디로 딱 꼬집어서 말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란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자연 예수님이 중심이시고,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것을 다루다 보니 처녀 마리아의 성령 잉태를 언급할 수밖에. 이 기상 천외의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시는 육화 첫 단계인 예수님 잉태 소식은 기이하게도 두 가지로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마리아에게는 가브리엘 천사가 직접 대면해 전달하고, 그녀의 약혼자 요셉에게는 속에서 알게 한다. 요셉 그는 어디 한두 번도 아닌, 무려 네 번이나 꿈을 꾼다. 그리고 성인 요셉은 기이하게도 한마디 말도 성경에 남기지 않았다. 아니 꿈에서도 그는 , 아니오.‘라는 그 어느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마치 벙어리마냥 오직 순종뿐이었다.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하니 그냥 받아들였고,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마태 2,13)라는 전달에, 그는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자 꿈에, ’이제 아기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마태 2,19)하니,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고, 또 꿈에 지시를 받고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단다(마태 2,22).

 

사실 꿈은 고대 동방에서 신이 자신의 계획을 밝힐 때 활용하는 도구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제 구약의 요셉의 꿈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묵상해 보자. 그의 첫 꿈은 단순히 그와 형제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번째는 그의 부모님까지 끌어들인다. 여기에는 요셉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는데, 이는 요셉 꿈 이야기가 각기 별도로 구성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이미 죽었다. 그러나 어디 요셉에게는 비단 라헬만이 어머니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의 아버지 야곱은 무려 네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두지 않았나? 그러니 굳이 라헬만이 요셉의 어머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게다. 아마도 레아를 두고도 어머니라 할 수도.

 

, 이제 그의 꿈 이야기의 본론 부분이다. 한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이 꿈이 요셉이 직접 자신이 꾼 오직 유일한 꿈이다. 다른 꿈 이야기는 모두 다 남의 꿈을 두고 그가 해몽을 하여준 이야기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의 꿈 내용을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꾼 이 꿈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우리가 밭 한가운데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 곡식 단이 일어나 우뚝 서고, 형들의 곡식 단들은 빙 둘러서서 내 곡식 단에게 큰절을 하였답니다.”

 

형들은 평소에 느낀 그대로 꿈 이야기를 듣고 즉시 무슨 뜻인지를 알아챈다. 소위 말해서 가정 공동체에서 제일 어린 게 형들을 지배하게 된다는 거다. 이는 가정의 질서를 깨는 행위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편파적인 자식 사랑에 못마땅한 마음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던 터라, 형들이 그에게 다짜고짜로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임금이라도 될 셈이냐? 네가 우리를 다스리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그리하여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평소보다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 이번은 전번의 보충인지라, 좀 짧다. 해와 달은 부모요, 나머지는 형제들이다. 가족 다가 다 요셉에게 다가가 굽신굽신한다는 거다. 어쩌면 요셉이 직접 꾼 이 두 개의 꿈은 그 자신의 생애를 예고하며, 특히 그의 형들이 양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내려가 그곳의 재상이 된 그들 동생 요셉에게 절하는 거고, 이어지는 것은 야곱 전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하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것일 게다.

 

이렇게 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야기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어 말하였다. “네가 꾸었다는 그 꿈이 대체 무엇이냐? 그래,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너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큰절해야 한단 말이냐?” 이번에는 형들에 앞서 야곱마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요셉을 호되게 꾸짖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자식의 그 꿈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하느님에게서 그 무언가를 알려주신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를 마음에 새겨 고이 간직하였단다.

 

그러나 형들은 이번에도 요셉을 시기하였다. 시기는 사랑이 전혀 없는 미움의 상태만큼이나 강한 감정이다. 사랑이 담긴 미움이면 질투다. 질투는 사랑이 담겼는지라 상호 보완되어 긍정의 힘을 갖는다. 그러나 시기는 아예 사랑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움이기에, 한쪽 아니면 양쪽 다 파멸의 길 밖에는 없는 상태이다. 형들이 이런 시기를 하였다는 것은 어쩌면 형들이 동생에게 강한 복수심마저 가졌다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는 것이기도 할 게다. 이 증오에 의한 보복이 어린 요셉에게 서서히 조여오고 있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요셉 형제들의 음모‘ / 요셉[4] 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꿈,곡식 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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