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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5,27~3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3 조회수1,389 추천수0 반대(0) 신고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5,27~33)

 

그런데 보시오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28-30)

 

사도행전 5장 28절의 '가르침'으로 번역된 '디다케스'(didaches)는 본절의 전반부에 대사제가 언급하고 있는 대로 '그 이름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친 것을 가리킨다.

대사제의 표현 가운데 엿볼 수 있는 것은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의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퍼뜨리면서'로 번역된 '페플레로카테'(pepllerokate)는 '가득하다'는 뜻의 동사 '플레로오'(pleroo)의 완료형으로서 앞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 아니라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대사제의 표현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 이미 예루살렘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지금 사도들을 심문하고 있는 그들에게 큰 위기감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사람'으로 번역된 '안드로푸 투투'(andropu tutu)는 '이 사람'이란 뜻이다.

희랍어에서 사람의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 단지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이며그 사람을 몹시 경멸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사제는 십자가에서 죽은 나자렛 예수를 여전히 저주받은 자로 여기며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의도적인 경멸은 내심으로는 예수를 몹시 의식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8)

 

본문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득하게 하여 예수님 죽음의 책임을 산헤드린 최고 회의 의원들인 자신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대사제의 주장이다.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는 것을 망설이는 빌라도에게 빠른 판결을 얻어내기 위하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 했던 말이기 때문에(마태 27,25) 예수님의 죽음의 책임을 그들이 져야 한다.

 

'씌우려'로 번역된 '에파가게인'(epagagein)의 기본형 '에파고'(epago)는 '~위에'라는 뜻의 전치사 '에피'(epi)와 '가져오다'는 뜻의 '아고'(ago)가 합성된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에게 무엇을 가져오다'는 의미이다.

이 동사는 죄의 형벌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의 응보적 행위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 단어이다(2베드 2,5).

 

본문에서는 물론 자신들에게 예수님의 피의 값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실상 대사제의 말대로 본문에서 이 동사는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죄값을 치르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응보적 행위로 결론 지워지고 말았다.

A.D.70년 유대 종교의 총 본산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더 이상 제사가 드려지지 않게 됨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이 가시화된 것이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29)

 

'말론 에'(malon e; rather than)에서 '말론'은 비교급 부사인데본문에서 비교급 불변사 ''(e)와 함께 사용되어 '~보다 오히려 더욱'이라는 뜻으로 비교의 정도를 더욱 강조한다.

여기서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은 복음 전파 금지 결정이며(사도4,19),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란 계속적인 '복음 전파'를 가리킨다결국 본문의 표현은 산헤드린의 결정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인간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0)

 

베드로는 하느님을 호칭함에 있어 '우리 조상들의'란 수식어를 사용했다이것은 자신들이 조상의 신앙을 이어받은 전통파라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그들이 조상의 신앙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죽인 예수님을 그들 조상이 섬겼던 하느님께서 살리셨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베드로는 본문에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매단 것을 가리킬 때 '십자가'를 뜻하는 '스타우로스'(stauros)를 사용하지 않고단지 '나무'를 뜻하는 '크쉴론'(ksilon)을 사용하였다이것은 신명기 2장 22~23절을 연상시키기 위함이다.

즉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는 신명기의 내용과 연관지어 볼 때 나무에 매달린 예수님은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나무에 매단 자를 '여러분이'(휘메이스; hymeis) 곧 '대사제와 산헤드린 최고 회의에 모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 지적하고 있다.

앞절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느님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데 이어서본절에서도 동일하게 하느님의 편에 있는 자와 그를 대적한 자를 명백히 대조시킴으로써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인 대사제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야말로 하느님을 대적한 자들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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