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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5 조회수1,1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선교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가 평소에 선교와 복음 선포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소신을 바탕으로 해서 복음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먼저 일반적인 개신교의 선교 방식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들의 열정은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방식은 잘못된 방식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본받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선교하는 방식이 자칫 오히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정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좀 더 온유적인 태도로 접근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 세상사람들이 진정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비근한 예를 하나 보실까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가령 그들의 눈에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도 단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느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단죄를 한다면 그게 과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까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아니, 박해를 한다고 해도 사랑해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텐데 박해도 하지 않는 사람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왜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시야가 갇혀 있으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 사례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저도 개신교에서 개종했지만 선교는 양적인 팽창에 염두에 두는 사고는 지양이 되어야 할 겁니다.

 

저는 개신교의 무분별한 배타적인 선교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들의 내적인 프로그램만큼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양 종교를 거친 사람으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야기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선교는 방향이 외부로 향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내부의 결속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 올 11월이면 영세 받은 지 9년이 됩니다. 지금까지 영세를 받은 사람들을 보면서 생존한 비율을 보면 결과가 너무 초라합니다.

 

저와 영세를 같이 받은 분들 중에서 지금까지 성당에 나오는 인원을 부끄러워서 밝힐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 기수만 그런 게 아니고 평균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거의 오십보백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을 보면서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일개 평신도로서 천주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참 가슴이 아픕니다. 개신교와 비교하면 사후 관리 프로그램이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단지 성당은 레지오 가입을 통해서 나름 새 신자를 관리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이런 방식이 효과를 냈다면 지금까지 제가 영세를 받은 이후의 신자가 상당수 성당에 나오셔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신교는 철저히 신자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으로 잘 무장시킵니다. 우리나라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에 많이 언급된 용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골든타임입니다. 저는 여러 종교를 거치면서 느낀 것이지만 일단 개신교만 보더라도 그들은 새 신자일 때가 교육을 잘해야 그 신앙이 오래 지속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체 신앙의 골든타임을 그 시기로 봅니다. 초신자 때 믿음이 잘 안착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 가톨릭이 대처하는 방식은 사자 새끼 생존방식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생존력이 강하면 살아남고 생존력이 약하면 도태되는 그런 방식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의 문헌을 좀 찾아봤습니다. 교회도 선교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인원수 확장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 내부가 복음화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실 것입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부에서조차 복음화가 되지 않으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의미인 것 같습니다. 교회 내부 복음화의 일순위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사랑은 따뜻함입니다.

 

아기도 엄마의 젖을 뗀 다음에는 바로 어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식을 먹어야 합니다. 처음에 영세를 받은 새신자는 영적으로는 아기인 것입니다. 좀 부족할 수도 있고 미숙한 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기존의 신자가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 보면 영세를 받고 많은 수가 이탈되는 경우를 보면 가장 큰 원인이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인 것 같습니다. 그 개별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 솔직히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교회 내부의 복음화가 되지 않은 단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런 복음화가 자리잡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 영세자를 배출한다고 해도 이런 현상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원래대로 계산상으로 보면 지금 시점에서 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저희 본당 신자 인원이 만약 지금까지 제가 영세 받은 이후 모든 신자가 잘 성당에 나온다면 본당 자리의 반 이상의 인원이 차지해야 될 겁니다. 오히려 제가 영세 받을 때와 비교해보면 더 늘기는커녕 줄어든 상황입니다. 비단 제 본당만 그렇지 않습니다. 타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한 가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물질문명에 비해 정신문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발전하고 인류는 이런 문명의 도움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실제 현실입니다.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미디어가 아주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이 미디어를 잘 활용해서 시대가 변한 만큼 시대가 변하는 흐름을 교회가 빨리 읽어내서 그런 변화에 대응을 잘 하는 것도 교회의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타 종교로 사람들이 가지 않도록 해야 그것도 장기적인 면에서는 지금은 우리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타 종교로 가지 않아야 나중에 우리 쪽으로 포섭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결론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예전과 다릅니다. 복음화에 대한 시각도 좀 더 폭넓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접근 방법을 모색해야 변하는 시대에 맞는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따라서 복음화도 시대가 변화면 그 변화에 잘 조화를 이루어야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맞는 복음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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