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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사소한 행복이 주는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5 조회수1,237 추천수3 반대(0) 신고

 

여러분은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하신가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판단과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없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문명을 이루고 사는 존재가 됩니다. 이래서 인간은 단순히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그 가치를 실현하는 존재라는 걸 알고 체험하며 살 때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철학자와 현인들은 말을 합니다.

 

이게 무의미하다면 그저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단순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태어나 신앙과 종교를 떠나서도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질 때 그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이건 인간의 삶만을 놓고 봤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은 이보다 더 높은 가치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소망입니다. 학창 시절에 은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책에서도 본 내용입니다. 사람은 세 가지의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 유익을 주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첫 번째 사람일 겁니다. 꼭 필요한 사람은 능력만이 있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은 꼭 능력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은 마치 시계와 같다고 봅니다. 아주 고급 시계를 보면 내부에는 아주 촘촘하고 정교한 부품들이 서로 어우러져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자기의 역할을 잘 충실하게 이행할 때 시계의 온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명품 시계라고 한들 시계의 본연의 기능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입니다. 그 기능이 부실할 때는 명품시계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일 겁니다.

 

우리 사람은 시계보다도 더 정교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여기엔 하느님의 영이 서며든 그런 존재입니다. 시계가 시계의 원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 값어치가 없듯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우리는 몰라도 저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고유의 임무를 맡겼을 겁니다. 우리 인간은 그 미션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가 힘든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미션을 찾는 게 우리의 인생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제를 찾는 게 하나의 미궁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는 그 세상을 바라보며 오로지 한 분 하느님만을 위해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한 세상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분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분들은 매일의 삶이 인간적으로 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생활이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반복적인 삶이지만 이건 단순히 인간의 의지만으로 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할 겁니다.

 

제가 아는 수사 신부님께서 간혹 사용하시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형제님, 저는 이미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입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서품을 받아 신부님이 되셨으니 그 의미를 부여하신 것일 겁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도 사용될 것입니다.

 

이미 신부님의 소유권은 하느님께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몸은 이제 자기 몸이 아니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젠 오로지 그분 소유의 몸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신분이라는 걸 의식하며 사신다는 뜻일 겁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욕망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한 삶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땅의 모든 수도자(신부님, 수녀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하느님만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로 마음먹은 삶을 우리는 우리와 동떨어진 삶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희는 그분들의 삶을 보면서 그분들이 한줄기 빛을 찾아 하느님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모습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표양과 표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롤 모델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은 각자가 다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평신도로서, 어떤 사람은 수도자로서 각자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또한 저마다 은사도 다 다르듯이 다 다를 겁니다. 시계보다도 더 정교한 하느님의 작품이 우리라고 생각했을 때 만약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제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간의 삶을 뛰어넘어 원래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존재이어야만이 이 세상에 존재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런 존재로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은 물질로 채워지는 행복은 일시적으로는 행복하다고 느낄 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허함이 남는 게 물질이 주는 행복입니다. 물질에 노예가 된 사람은 그런 것조차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품은 사람이 최고의 부자입니다. 하느님을 품은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은 지금까지 몰랐던 행복을 아주 만끽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잠시 지나가는, 순간 바치는 화살기도가 아닙니다. 54일 동안 누군가를 위해 작정하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지만 이런 기도는 처음입니다.

 

묵주로 9일 기도를 하지만 그냥 하지 않습니다. 아마포로 만든 기도보 위에 기도초도 켜고 성모님과 예수님을 모시고 합니다. 촛대도 제가 예전에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것을 샀기 때문에 기도하는 분위기도 참 멋스럽습니다. 사실 제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할 때 이렇게 해 본 적도 없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분이지만 저에게는 누나 같고, 이모 같은 분이고 정말 저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신 분이라 저에게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그분이 앓고 있는 병마를 이기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자매님이 병마와 싸우시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분을 위해서 작으나마 기도를 할 수가 있다는 게 저에겐 작은 행복입니다. 만약 제 기도의 힘으로 쾌유가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 행복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먼 곳에 떨어져 있고 14살 연상인 자매님을 위해 드리는 소박한 기도이겠지만 이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울림이 되어 하나의 기적으로 이어져 제가 드린 기도가 자매님에게 치유의 은총이 내려진다면 이 또한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장구하게 글을 쓴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비록 소박한 기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줄 수 있다는 존재로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만 해도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도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자매님이 저에게 신앙 안에서 많은 사랑을 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해도 그냥 단순한 기도 정도로만 했을 겁니다. 그 자매님이 저에게 고마워하시지만 사실은 더 넓게 생각하면 오히려 제가 그분께 고마워해야 정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자매님 때문에 기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저에게 제공해 주셨다고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사실 참 신기합니다.

 

그냥 그분은 부활을 앞두고 간단한 자신의 일을 언급한 문자를 통해 저에게 알려주시면서 인생의 훌륭한 가르침을 주시려고 알려주신 문자였지만 저는 그 문자를 통해서 자매님의 투병 사실을 알았고 그로 인해 제 가슴이 너무 아파 그럼 제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게 기도밖에 없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하느님께서 그런 계기를 자매님을 통해서 저에게 만들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니 그렇게 해서 제가 기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신앙 안에서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냥 사랑한다면 이상한 느낌일 겁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는 영적인 형제로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더 가슴이 아픈 게 사실입니다. 이런 작은 기도 속에서 행복을 느끼면 그게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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