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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다의 아들들[6]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91]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6 조회수1,83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 유다의 아들들

 

그때에 유다는 형제들과 떨어져 내려와, 히라라는 이름을 지닌 아둘람 사람에게 붙어살았다. 유다는 그곳에서 수아라는 이름을 지닌 가나안 사람의 딸을 만나 아내로 삼고,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지금까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란에서 낳은 요셉만이 그의 동향 일부가 거론되었다. 알다시피 열일곱 요셉이 형들의 시기 때문에 미디안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 넘겨져, 이집트로 가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팔아넘겨 진 게(37,36) 전부이다.

 

그는 현재까지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들짐승에 물려 죽은 줄 알려졌지만, 일단은 살아있는 걸로 봐야 한다. 그것은 적어도 이집트 내신인 경호대장이 거래로 샀다니까, 나름대로 그가 요셉을 잘 길들여 적어도 돈값은 받아 낼 터이니까. 아무튼 이 요셉이 자기 형들의 시기에도 죽음을 면하고 이집트 행이 정해진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이가 바로 유다이다. 그가 형제들에게 분명히 이렇게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 그 아이를 상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는 손을 일절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의 이 제안에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만약 그의 이 의견에 형제들이 동조하지 않았거나, 그의 이 제안이 없었다면, 어린 요셉은 아마도 그 구덩이에서 영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집트에서의 요셉의 생활은 일단 추후로 미루고, 다시 유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가 형제들에게 떨어져 나왔다는 것은 아버지 야곱에게서 분가하였다는 거다. 그는 히라라는 이름을 지닌 아둘람 사람에게 붙어살았다니, 아둘람은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가까운 곳에 있다. 거기에서 그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해 에르, 오난, 셀라를 낳았다. 그가 셀라를 낳았을 때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크집이라는 곳에 살았다.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얻어 주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타마르였다. ‘대추야자나무를 뜻하는 이 타마르의 출신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으나, 아마도 가나안 여인인 것 같다. 이 이름은 에돔 가까이에 있는 유다의 한 지역으로도 알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 ‘파수꾼을 뜻하는 에르가 어떻게 악하였는지는 잘 모른다.

 

당시만 해도 이런 비정상적인 죽음은 어떤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벌로 이해되었다. 다만 유다나 에르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에 따른 징벌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타마르는 이른 나이에 자식도 없는 젊디젊은 생과부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유다인들에게는 역연혼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는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후사가 없이 죽었을 경우, 그의 다른 형제가 형수 또는 제수와 혼인하여 죽은 이의 자손을 대신 낳아 주는 제도이다(신명 25,5-10).

 

그래서 유다가 오난에게 네 형수와 한자리에 들어라. 시동생의 책임을 다하여 네 형에게 자손을 일으켜 주어라.” 하고 이르면서, 형의 아이를 낳아 줄 것을 바랬다. 본래 과부 타마르는 시동생에게 후손을 얻어 에르의 자식을 얻는 것이지, 시동생과 결혼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녀는 오난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타마르에게는 아들 하나 얻는 것에 불과한 거다.

 

오난도 이 제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형수에게 아들을 낳아 줄 의무가 있었다.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신 벗긴 집안’(신명 25,10)이라는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그 자손이 자기 자손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형수와 한자리에 들 때마다, 형에게 자손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고 그것을 바닥에 쏟아 버리곤 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그도 에르와 마찬가지로 죽게 하셨다.

 

그러나 오난의 이런 인위적 피임은 윤리적으로는 결코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느님의 창조 목적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1,28). 그래서 그의 이런 행위는 반드시 비난받을 만하다. 어쩌면 이는 그가 성조들에게 많은 민족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마저 의도적으로 방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이런 행위를 오나니즘이라고도 하는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인위적 피임을 강력히 단죄한다.

 

이렇게 정력적인을 뜻하는 둘째 아들 오난마저 비명에 숨지자, 유다는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제 셋째 셀라만 남았다. 그마저 이렇게 요절하면 어떨까 염려도 했으리라. 나아가 그는 또 아들 둘 모두가 이런 죽음을 맞는 것은 며느리인 타마르에게 그 원인이 있겠다고 의심을 했을 수도. 그래서 유다는 자기 며느리 타마르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셀라가 클 때까지 너는 친정에 돌아가 과부로 살고 있어라.” 그는 이 아이도 제 형들처럼 죽어서는 안 되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유다의 이런 생각은 두 아들이 죽은 진짜 이유를, 혹시 며느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며느리를 이참에 아예 어떤 구실을 만들어 쫓아 보낼 작정을 했을 수도. 그렇지만 그는 명목상으로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를 내세워, 결혼 적령기가 되면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하고는 친정에 가 당분간 머무르게 한다. 그만큼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마저 죽을까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타마르는 친정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친정에 머무르는 며느리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은 것 같다. 이는 두 아들이 죽은 진짜 이유가 자기 아들보다는 며느리 쪽에 둔 것을 지레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타마르와의 관계를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유다의 판단이 옳은지의 여부는 후에 밝히기로 한다. 암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수아의 딸,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타마르의 꾀‘ / 요셉[4] 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오나니즘,역연혼,타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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