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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7 조회수1,517 추천수1 반대(0) 신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육신을 입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바로 기본적으로 생존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옵니다. 생존욕구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배고픔이 하나의 위기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입니다.

 

만약 생물학적으로 이 배고픔이라는 시간이 장기화된다면 아사의 위험까지 가게 됩니다. 이걸 알기 때문에 일단 인간은 이 상태가 되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봅니다. 그게 모든 인간이 가지는 기본 본능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어보신 분들은 왜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갔는지 아실 겁니다. 그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수단으로써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들은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면서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단순히 하나의 기적으로써만 인정을 하는 그런 영적인 수준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육적인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주목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하시는 이 말씀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근데 오늘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뭔가 말씀하시는 말씀 속에 숨은 뜻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새벽까지 묵상하면서 많은 것을 고민했습니다.

 

제가 묵상하며 찾은 예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여러 복음에서 표징이라는 것을 언급하실 때 그때 예수님의 마음과 오늘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뭔가 표징과 이적이 있어야 만이 예수님을 보통의 인간인 사람들과 달리 보려고 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런 마음에 안타까워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가령 이 세대는 표징만을 요구하는구나!” 하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릅니다. 제 언어적인 느낌으로는 완전 다릅니다.

 

잘 한번 보세요. 오늘 복음을요. 차라리 오늘 예수님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이제는 표징을 보고서라도 나를 찾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런 마음이셨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어려고 힘써라.”

 

이 말씀을 보시면 지금 이 사람들은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이들의 마음은 아시지만 좀 아쉬운 것입니다. 물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빵이 필요하지만 차라리 이제는 기적 속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서 드러나는 빵의 의미를 더 알았으면 하는데 이들은 단지 그들의 일차적인 생존욕구만 채우는 그런 빵만 생각하는 것에만 생각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셨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양식은 바로 믿음입니다. 제 말이 아니고 주석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결국 다른 식으로 표현을 하면 영원한 생명인 영생은 믿음과 직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양식인 믿음은 예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만 국한해서 묵상을 해보면 영생은 믿음 여부에 따라 주어진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표징을 보고서라도 제발 그 양식을 얻는 것에 집중을 하라는 말씀이실 겁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그들은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방법을 여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이때 잘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줄 것인데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들이 하는 말을 한번 잘 보시면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는 말입니다.

 

혹시 좀 이상한 면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그들의 말속에 하느님의 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양식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이제는 하느님의 일이라는 거라는 걸 인식하였다는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걸 인식하지 않고서 어찌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복음에서는 이때 예수님의 마음을 요한 복음사가는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묵상을 해보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는 뭔가 내 말을 좀 알아듣는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실 것 같습니다. 주석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단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일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얼마 전 복음에서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언급을 해 드렸습니다.

 

그런 주석적인 설명보다는 단순히 예수님의 일에 협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게 있겠습니까? 아주 쉽게는 그냥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게 예수님의 일에 협조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쉬운 내용입니다. 내용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관련해서 하나 묵상을 해보면 오늘 스테파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금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 충만한 스테파노의 모습에 압도되어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게 되자 거짓 증언을 꾸며서 모함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오늘 독서 마지막 말씀을 보시면 참 의미 심장한 말씀이 있습니다.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라는 말씀을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사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서에 나오는 걸 보면 유심히 바라보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하나로 묶어 보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곰보의 얼굴을 가진 사람도 그 곰보 자국이 보조개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을 한다면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어딘가에 누구나 사람에게는 천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천사의 모습을 보려고 유심히 관찰해야 할 겁니다. 노력하면 볼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이 세상이 사랑으로 넘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으려면 저희가 온전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가질 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그저 추구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덤으로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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