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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8 조회수2,15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4월 28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의로우신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복음 요한 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

’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미술 학원에서 모델을

 앞에 두고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확인하면 다 똑같을까요?

한 명의 모델을 똑같이 보고서

그렸으니, 똑같은 그림이

학생들의 숫자만큼 나왔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같은 모델이지만

학생들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누구는 전신을, 다른 누구는

모델의 부분을 그리는 등

제각각의 그림이 나왔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모두 다릅니다.

어느 사람이 길에서 울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구는 힘들어서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같이

울면서 함께 합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면서 쳐다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에서 울고

있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과

감정에 따라 모두 다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주님께 대한 내 생각이

정답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단지 한 부분만을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더라도,

보는 모습이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몸으로는 그분 모두를 완전하게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반대했는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픈 사람을 치유해주시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또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 하느님과 함께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빵의

기적을 본 뒤인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닫혀 있는

생각의 틀에 주님을 가두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확신을 하니 주님께서

보여 주신 모든 표징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과 똑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대한 믿음이 모자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의 주님께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까요?

만약 나와 다르다며 이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 역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습관이 주님께도 그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 배고프지 않으며, 절대

목마르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빵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내 생각의 틀에

주님을 가둬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힘겨운 상황에 처했을 때

부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마라.

침울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마라.

폭풍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올 것이다.

(로버트 슐러)

더 웃고, 더 사랑하면서 행복한

‘나’를 만드세요

웃기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렵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가장

많이 하던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이 웃음을 잃어갑니다.

그보다는 인상을 쓰면서 얼굴에

보기 싫은 주름들이

하나둘 늘어갑니다.

왜 웃음이 사라질까요?

그만큼 지급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조사 결과,

하루에 한 번 웃으면

행복지수가 50.74점이었으나,

여섯 번 이상 웃으면 65.86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랑 표현도

하루 두 번에서 다섯 번 할 때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갔습니다.

한 번도 안 할 경우는

50.76점에 그쳤습니다.
웃는 것만으로도

또 사랑표현만으로도

나의 행복지수는 올라갑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간직하다 보니,

웃지도 또 사랑표현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는 결국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줄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해 온

나의 행복을 위한 말과

행동을 어른이 되었다고

멈춰서는 안 됩니다.

더 웃고, 더 사랑하면서,

더 행복한

‘나’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굳게 믿으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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