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타마르의 변호[8]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9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8 조회수1,19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 타마르의 변호  

 

이처럼 중요한 개인 소지품을 유다는 서슴없이 며느리에게 담보물로 맡겼다. 그만큼 그는 그 창녀에게 반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며느리와 한자리에 들었다. 타마르는 그 길로 임신을 해 유다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며느리와 한 자리에 드는 자는 추잡한 짓을 하였으므로, 그 죗값으로 그는 반드시 죽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0,12).라는 율법이 무색할 만큼 유다는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 물론 며느리 타마르의 이런 기발한 발상도 율법을 따지자면 빠져나가기가 참으로 궁색할 수도. 암튼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묵상에서 확인해 보자.

 

이 일이 있고 난 뒤, 타마르는 돌아가서 쓰고 있던 너울을 벗고 다시 과부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는 타마르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유다의 가문에 들어온 이상,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선택된 하느님 백성의 후손을 이어 줄 생각뿐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하느님께서 성조사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불러내실 때 하신 첫 말씀인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12,2)라는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여인이었다. 에나임에서의 야곱과 타마르의 이런 기이하고도 운명적인 만남은 아마도 하느님의 힘이 이들에게 미치지나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유다는 타마르를 자기 아들 셀라에게 데려다줄 생각을 까마득히 잊고서는, 며느리를 시댁으로 다시 부르겠다고 약속한 것을 아예 노골적으로 어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나임에서 이름 모를 창녀에게 약속한 것을 건네주면서 그가 담보물로 맡긴 것만은 찾고자 한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신전의 창녀들이나 창부들과 관계를 맺으면 풍성한 곡식과 많은 가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유다는 그들에게는 이방인이었다. 비록 매춘이 불법이 아니었지만, 유대인에게는 나름으로 창피스러운 짓이었다. 그래서 그는 약속한 매춘의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그가 맡긴 담보물을 친구를 이용해 은밀히 되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체면을 지키고자 자기 친구 아둘람 사람 편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면서, 그 여자에게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부탁하였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그곳에서 매춘을 한 여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가 그곳 사람들에게 에나임 길가에 있던 신전 창녀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여기에는 신전 창녀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유다에게 돌아가 말하였다. “그 여자를 여러 수소문을 했지만 결국은 찾지를 못했네. 더구나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기에는 신전 창녀가 없습니다.’ 하더군.”

 

빈손으로 돌아온 친구 아둘람 사람에게 유다는 짐짓 태연한 척하며 말하였다. “가질 테면 아예 어디 가져보라지. 우리야 창피만 당하지 않으면 되니까. 보다시피 내가 이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냈는데, 자네가 그 여자를 찾지 못한 게 아닌가?” 그의 말은 화대를 달라는 대로 정해 그 비용을 지불하고자 우린 할 만큼은 다 했으니, 굳이 그녀의 행방을 공개적으로 수소문까지 하여 찾을 필요까지야 없지 않은가!’이다. 이렇게 그는 담보물마저 되돌려 받는 걸 진작 포기한다.

 

하기야 이런 것까지 공개적으로 하다가는, 오히려 자신을 대중 앞에서 망신살 뻗칠 수 있을 것이라는 염려까지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실 그는 이 수소문도 그가 직접 하지를 않고 친한 친구를 시켜 직접 확인토록 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유다가 담보물을 포기한다고 해서 그가 범한 그 행위가 과연 없는 일로 덮어질까? 그리고 타마르에게는 과연 별일이 전혀 없을까? 그녀는 과부 옷을 입은 채로 마냥 그렇게 셋째를 친정에서 기다리기만 할까?

 

유다가 담보물을 돌려받기를 포기한 지 대략 석 달쯤 지난 뒤, 유다는 그대의 며느리 타마르가 창녀 노릇을 했다네. 더군다나 창녀질을 하다 임신까지 했다네.” 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금 법적으로는 그녀는 사실상 셀라와는 약혼한 상태나 다름없다. 그런 타마르가 임신했다는 것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간음죄를 범했다는 거다. 상대는 분명히 야곱의 아들 셀라는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타마르의 상대는 누구일까?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율법적으로 간음한 여자는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게 되어있었지만, 그 규정이 너무 가혹한 처형 방식이라 여겨 훗날에 사제의 딸인 경우(레위 21,9)를 제외하고는 돌로 쳐 죽이도록 조금 완화하였다(신명 22,13-29). 따라서 유다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간음한 며느리 타마르를 끌어내어 즉시 그녀를 끌어내어 화형에 처하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이런 특수한 처형은 의당 성문 밖에서 이루어졌다.

 

사실 타마르는 이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불의를 손수 해결하고자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혈통을 이어주려 한 그녀였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아버지를 상대로 벌인 대담한 일이었다.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된 타마르는 시아버지 유다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한 가문의 혈통을 보존하고자,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그녀는 또 말하였다. “이 인장과 줄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를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유다가 그것들을 살펴보다 말하였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며느리가 가진 아이는 자신의 아이였다. 물적 근거가 너무나 확실해서 그 어떤 부인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 애가 나보다 더 옳다! 내가 그 애를 내 아들 셀라에게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는 타마르의 무죄를 주장한다. 어쩌면 이는 자기보다 며느리가 더 옳다는 것은 죄가 없음을 뜻한다. 한편으로 유다의 그 말에는 며느리가 지신보다 더 의롭다는 강력한 뜻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타마르의 행동이 비록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후손이 끈기지 않도록 유다보다 더 정성과 힘을 쏟았다는 의미에서 의롭다는 것이다. 히브리 말에서 의롭다는 개념은 어떤 관계 또는 원칙에 대해서 성실성을 드러낸다. 이 점에서 성조의 후손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성실성은 의로운 행위로 가히 평가되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유다도 아들 셀라를 며느리에게 아내로 주지 않았다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며 잘못을 고백한다.

 

이리하여 이방인인 며느리가 시댁 가문의 혈통을 잇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을 쓴 것으로 유다는 단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유다는 며느리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한편, 그 뒤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약속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구원을 성취시키고자 이방인까지도 당신 구원 계획에 참여시키신다. 이제 타마르는 정당한 출산을 하게 될 것이고 그 아이는 죽은 남편의 아이가 아닌, 유다의 아이로 합법적인 자리를 차지할 게다. 그리고 성경은 기록할 것이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누구누구를 낳았다라고. [계속]

 

[참조] : 이어서 '쌍둥이를 낳은 타마르‘ / 요셉[4] 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타마르,화형,간음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