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4.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9 조회수2,13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4월 29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복음 요한 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쉰한 살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백여 편의 장편소설,

단편소설 그리고 수많은 희곡을

쓴 작가입니다. 혹시 이 작가의

기억나는 작품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작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가 마신 커피 때문입니다.

글쎄 열정적인 창작 작업을 위해

하루에 보통 오십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커피를 좋아합니다.

오십 잔까지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것도 달달한 커피가 아닌 쓰디쓴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 커피는 2001년에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갖게 된 생각은

‘어떻게 이런 커피를 좋아할 수 있지?’

라는 것이었습니다. 둘둘둘 커피,

일명 믹스 커피를 즐겨 마셨던 당시에,

쓰기만 한 에스프레소는 마치

사약 같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마시다 보니 깊은 향에 취하게 되었고,

그 쓴맛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처음 접하는 사람 역시

이런 느낌이 아닐까요?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은 이 세상

삶을 힘들게 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어리석은 모습을

비춰질 수밖에 없어 보일 것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고

곧바로 냉담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쓴 커피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알아가면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와 묵상, 성경 읽기,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명령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이제까지 느낄 수 없었던

깊은 행복의 향기에 취하게 됩니다.
인간은 이 생명의 양식을 먹음으로써

죽음을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성찬례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의 양식은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 우리의 몸이

썩지 않게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주님이시기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믿는 이들과

함께하십니다. 이는 우리 역시

주님처럼 아버지 뜻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절대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굳은 믿음을 갖추기 위해

주님의 맛을 그리고 그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도와 묵상, 성경 읽기,

희생과 봉사를 통한 사랑의 실천 등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인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육체가 마비된다고 하면

공포에 사로잡혀 이를 피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할 테지만,

우리의 영혼이 마비되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에픽테토스)

다른 이를 도우며

함께 하는 마음의 필요성

링겔만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 농업공학자

막시 밀리언 링겔만에 의해

생겨난 말로,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효과’를 말합니다.
다수의 참가자를 모아 놓고

줄다리기 시합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참가자 한 명이 당긴

 무게는 63kg이었다.

그렇다면 2명이 되면 두 배인

126kg이 되어야 하는데,

118kg이 된 것입니다.

3명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89kg도 177kg도 아닌,

160kg에 불과한 무게가 나온 것입니다.

이를 백분율로 계산하면,

1명의 경우 100%, 2명일 때

93%, 3명일 때 85%입니다.
개인이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 하나쯤이야.’라는 책임 전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이를 통해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도우며 함께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더 높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되기를

바라시며 주님께서는

신앙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