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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께서 돌보시는 요셉[10] / 요셉[4] / 창세기 성조사[9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30 조회수1,455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0. 하느님께서 돌보시는 요셉

 

이제 다시 요셉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열일곱 살 그는 형들의 시기로 은전 스무 닢에 이집트로 팔려서 갔다. 미디안인들이 그를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넘긴 것이다. 형들은 처음에는 요셉을 죽이기로 작정했으나 맏형 르우벤의 설득으로 일단은 죽음을 면했으나(37,21-22), 다시 형 유다의 권유(37,26-27)로 결국은 이집트로 팔려 간 것이다. 그는 자기 주인인 파라오의 경호대장의 집에서 살았다.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성조사 마지막 인물 요셉의 삶을 묵상하면서 아주 특이한 것이 하느님과의 소통 관계이다. 이전의 성조사들은 하느님과의 직간접 소통이 수차 있었다. 가끔은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다. 대부분은 하느님의 주관하는 일방 전달이었다. , 환시 등의 방법으로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하느님과의 소통이 일절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성경 저자가 일방적으로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으므로를 일컬어서, 이미 하느님과 요셉의 소통이 아예 요셉의 삶 자체에 배어 있음을 전제한다.

 

앞으로도 요셉과 하느님과의 이 소통에 관련하여 묵상 거리를 의도적으로 찾아보겠지만, 현재로서는 그저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으므로내지는 그분께서 머무르시기에선에서의 소통 관계가 설정될 것 같다. 아무튼 요셉에게는 이렇게 하느님과 이미 함께하시는 삶이기에, 요셉의 삶에 어느 선에서는 다소 굴곡이 있을 지언 정, 큰 틀에서의 생각과 행동 그 자체가 다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그래서 요셉의 이야기에는 그의 행동거지에는 부정적인 면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긍정적이다. 그리고 여러 고민의 흔적이 없이 너무나 단출하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다 하느님이 해 주신다 이니까 그야말로 선명하다. 혹시 주위의 방해내지는 시기가 있다손 쳐도 어차피 해피엔드로 귀결될 것으로 여겨지기에, 그리 긴장감을 가져야 할 필요는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이것이 요셉 이야기에서 묵상 거리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 같기에, 이 점 차제에 미리 밝혀 둔다. 다 하느님이 함께하는 삶을 사는 요셉이기에.

 

이렇게 큰 틀에서의 요셉의 일생을 미리 예단하는 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요셉의 꿈으로 미리 다 드러내 보여 주셨기에. 요셉은 그저 자기가 직접 꾼 그 꿈대로 어떤 일의 단지 선도자 역할만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 그의 소명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 성공적으로 이끌고 가, 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소임을 맡을 뿐이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시는 일이었다. 왜 그분께서 손수 선택한 민족을 이민족의 지배하에 두려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것도 그리 짧은 햇수가 아닌, 무려 사백 년간이다. 아무튼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일부로 미리 정해졌다는 것으로 선을 그어두자.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를 아브라함에게 알리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네 후손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그런 다음, 네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너는 평화로이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다. 너는 장수를 누리고 무덤에 묻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15,13-16)

 

이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겪게 될 억압과 탈출을 시사한다. 처음에는 이 히브리인은 종족의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서, 사회에서 뒤처져 있던 사람들이나 모임을 가리키는 뜻이었다. 때로는 이 히브리인을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돌아오면서 현지인 아모리 족을 쳐부수고 정착(신명 2,24-33)하기 시작할 거라는 약속이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그때가 되면 가나안 지역에 온갖 우상 숭배로 타락할 것이란다.

 

이렇게 종살이 기간의 시작은 요셉으로부터 시작해 아모리 족의 타락이 다 찰 때까지가 사백 년이라는 거다. 이 사백 년간의 긴 기간의 시작은 의당 요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작의 이유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다 하느님의 뜻이려니 하자.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가 이집트 종살이 시작을 알리나 싶다. 그의 첫 여정은 이렇게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 사람인 포티파르는 요셉을 자기 집에 두고 집안의 모든 일을 돕도록 했다. 하느님께서는 형제들의 시기로 여기까지 팔려 온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말끔하게 잘 처리하였다. 이렇게 히브리인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이집트인 경호대장의 포티파르의 눈에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리하여 포티파르는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그가 하는 일마다 그분께서 그의 손을 통해서 잘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어 전적으로 그의 시중을 도맡아 들게 되었다. 주인은 요셉을 자기 집 관리인으로 세워,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의 손에 다 맡겼다. 주인이 요셉을 자기 집과 모든 재산의 관리인으로 세운 뒤부터, 하느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담뿍 내리셨다. 하느님의 복이 집 안에 있는 것이든, 들에 있는 것이든 그의 모든 재산 위에 미쳤다. 포티파르는 자기의 모든 재산을 요셉의 손에 내맡기고, 요셉이 있는 한 자기는 먹는 음식밖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요셉은 하는 일처럼 몸매와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요셉은 어머니 라헬을 닮아(29,17) 용모도 아주 빼어난 청년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호사다마라고, 이렇게 좋은 조건이 되면 어떤 시기나 질투가 의당 일기 마련이다. 이는 요셉이 용모가 뛰어났기에 곤혹스러운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을 미리 암시한다. 그 고난은 주인 포티파르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면서 시작되었다. 하느님께서 늘 돌보시는 요셉이 전권을 쥐고 집안일을 관리하는 어느 날이었다. 경호대장의 안방마님이 요셉을 노골적으로 유혹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포티파르 아내의 유혹‘ / 요셉[4] 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이집트 종살이,히브리인,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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